닥터스트레인지 대혼돈 멀티버스는 여기 우주 밖 다른 우주에 ‘나’가 있다는 전제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다른 우주의 ‘나’는 나와 같은 듯 다르다.
여기 우주의 닥터 스트레인지(이하 스티븐)는 옛 연인 크리스틴의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한다. 표정으로 보아하니 아직 스티븐은 마음 정리가 안 끝난 듯 하지만 쿨하게 축하해준다. 그러면서 묻는다. 행복하냐고.
영화 초반의 Are you happy? 는 영화 내내 반복된다. 흑화 된 완다도 결국은 그놈의 happy를 위한 여정이다.
조건 하나가 충족됐다고 해서 해피가 진행형이 될 수 없다. 영화는 모두가 알지만 모두가 외면하는 그 해피의 지점을 파고든다. 이 사람이 ‘있으면’ 행복할 거 같아서 결혼했지만 이 사람이 ‘있어서’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이혼하지 않는가. 그러니 있고 없고 가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없다.
완다는 아이들이 ‘있는’ 세상에만 행복이 있다고 믿기에 대광활 환장극의 주인공이 된다. 아이들이 항상 사랑스럽게 ‘있는’ 존재가 아니고 어느 땐 내 집이 환장극의 무대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완다는 모르는 것 같다. 대신 쌍둥이의 엄마로 사는 저 우주의 완다는 알고 있다. 행복하게 살게 대신 사랑으로 돌볼게 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끊임없이 움직이기에 조건의 있고없고로 규정되지 않는다. 움직이는 행복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나를 다듬어야 한다. 하나가 가면 다른 하나가 오는 게 인생이랬다. 끊임없이 오는 그것들을 처리하는 나의 태도에서 행복이 결정된다.
스티븐은 완다와 싸우다가 다른 우주로 넘어가서 크리스틴을 만난다. 행여하는 기대감에 이쪽 우주에선 그들 관계가 괜찮냐고 크리스틴에게 묻지만 대답은 애매하다. 이 우주나 저 우주나 그들은 그다지 신통치 못했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전투가 끝난 뒤 스티븐은 크리스틴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의 고백이 그들의 행복을 진행형으로 만들지 못하고 심지어 곧 헤어져야 한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사랑을 말한다. 스티븐의 고백에 크리스틴은 두려움을 이기라고 말한다.
미친 모성애로 끌어가는 대환장 서사시에서도 배울 게 있었다. 뚫지 못하는 두려움 때문에 스티븐이 행복할 수 없다는 걸 크리스틴은 알고 있어서다. 스티븐에게 꼭 필요한 말이지만 동시에 관객에게도 필요한 말이었다. 당신의 행복은 당신 마음에서부터 나온다고. 멀티버스 씩이나 넘나들며 쟁취해야 할 무엇이 아니라 당신을 가다듬는데에서 시작한다고.
잘생긴 오이 오빠의 서사는 화려한 마법 대결보다 크리스틴과의 몇 마디와 손목시계로 내게 압축됐다. 그들의 마지막 서사에 나는 괜히 행복해졌다. 이런 맥락 없는 행복도 꽤 괜찮았다. 햇빛이 쨍한 5월의 어느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