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 정말!(4)

by 음감

"너랑? 호텔을? 둘이? 왜?"


여자가 큰 눈을 더 치켜뜨고 데굴데굴 소리가 들릴만큼 눈동자를 굴린다. 정말 모르는 눈치다.


"야, 너 정말! 기억 안 나? 그 태백 남자랑 헤어지고 맨날 쳐 울던 그때?"


데굴데굴이 순간 멈추며 여자 목소리가 한 톤 낮아진다.


"어... 나... 그 때 기억이 거의 없어. 6개월간 살이 6킬로 빠졌다는 거밖에?"


"미친, 그 몸에서 6킬로가 빠지면 사람이냐?"


"생리도 6개월 끊겼지. 나 마리아처럼 성령으로 잉태한 줄. 크흐"


가득 담긴 소주를 원샷하며 여자는 단전부터 감탄사를 끌어올린다. 호텔방에서 뭐했냐는 여자 질문에 남자도 제 술잔을 금방 비운다. 여자의 생글생글이 다시 돌아온다.


"곱게 잤구나? 아무 시도도 못하고?"


"미친, 딴 놈 생각하며 쳐우는데 무슨 시도, 내가 짐승이냐? 그나저나 넌 남자랑 호텔을 얼마나 다녔길래 아예 기억을 못 해?"


괜한 심통을 부리는 남자 술잔에 술을 따르며 여자는 한껏 능글능글하게 받아친다.


"그걸 다 어떻게 세냐. 두 자리, 아니 세 자리 넘어가면 다 똑같지. 그리고 나는 5성급만 취급하는데 니가 싸구려에..."


여자 술잔을 채운 남자는 제 술잔을 여자 잔에 부딪히고 또 원샷이다. 여자도 말을 끊고 같이 마신다. 소주가 달면 달리는 날인데 오늘은 자제해야지 싶다.

"암튼, 이렇게 더블로 터뜨리는구나. 내가 싱글이면 빈정 상해서 이 자리 안 나왔을 거야."

"당신이 싱글이었으면 같이 집에서 마시지 않았을까?"

술을 넘기려던 여자 손이 잠깐 멈칫했지만 안 그런 척 후루룩 잔을 비운다. 남자는 그 찰나를 느끼며 말을 잇는다.

"예쁘게 입고 와라. 신랑입장 전에 격하게 포옹 한번 해야지."


"풋~ 뭐래."


남자가 카운터를 향해 빈 병을 높이 들자 직원이 잽싸게 새 소주를 가져온다. 남자는 팔꿈치로 소주병 바닥을 툭툭 치며 말한다.


"분명히 100퍼 안전한 날이라고 했거든. 지갑에 있는 cd 꺼내지 말라고 지가 먼저 그랬다고."


꼴꼴꼴, 첫 잔의 리드미컬한 효과음 뒤로 여자가 바로 받아친다.


"내숭 떠네. 100퍼 안전한 날이 어딨냐. 지가 쌩으로 하고 싶으니까 그런 거지."


"아니래도!"


"아니래도오오~"


여자는 남자의 말꼬리를 잡아 따라 한다. 남자가 홱 손을 들자 무서워하는 흉내를 내다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콧노래를 흥얼댄다. 그들이 세 번이나 재관람했던 뮤지컬 렌트 주제가 seasons of love 다.


여자가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52만 5천2백 분... 가사 위로 햇빛이 부서지는 착각에 남자는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켠다. 이번에는 여자가 물병을 높이 들었고 직원은 역시나 잽싸게 새 물통을 갖다 준다.





1시간 10분 전. 아직 신랑신부도 안 왔을 시간이다. 오랜만에 신은 힐이 불편한 여자는 혼자 로비 구석에 기대어 서있다. 20분 후, 저쪽에서 신랑이 온다.


어젠 피곤해 보였는데 오늘은 약간 상기된 표정이다. 지인들과 섞여 의례히 하는 인사를 나누다가 여자와 눈이 마주친다. 머리 커도 어깨가 넓으니 턱시도가 잘 어울리네,라고 여자 혼자 생각한 순간 어느새 남자는 여자 앞에 서있다.

"왔어? 우리 누나 나랑 격하게 포옹하기로 했잖아"

뭐라 대답할 틈도 없이 남자는 여자를 밧줄로 묶듯 꽉 쥔 포옹을 한다. 차렷한 손이 더 민망해진 여자는 남자의 등을 몇 번 토닥인다.

'야, 너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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