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의 어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진민 작가님 북토크를 들었다. 시작은 한자였으나 끝은 태도로 이어지는 매끄러운 연결에 반해 나도 그런 시작을 해보고 싶었다. 내 북토크가 코앞이어서 그랬다.
원하는 대로 된다면 난 진작에 어벤저스가 됐겠지. 대체 어떤 어원부터 파야 내 북토크로 연결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북토크 당일까지 감 근처도 못갔다. 역시, 그런 고급진 북토크는 이진민 작가님 급은 되어야 하는 거야, 나 따위가 무슨…의 돌림노래를 반복하며 북토크 장소에 갔다.
감 없는 나를 위해 그곳엔 사람이 있었다. 나 당 떨어질 거라며 케이크 챙겨 온 사람, 북토크 홍보 디자인을 해 준 사람, 센 강 노천카페 커피 향이 부럽지 않은 드립커피를 챙겨 온 사람, 북토크 장소로 한강뷰 오피스텔을 무료로 빌려준 사람, 무엇보다 유재석을 능가하는 토크 진행까지.
그전에 결코 몰랐던 어떤 과함, 어떤 흘러넘침이 넉넉하게 나를 감쌌다. 그 과함에 아침의 '나따위쏭'을 잊고 '나 굉장히 착하게 살았나보다' 식의 착각도 했다. 착각에 취해 어찌저찌 북토크를 끝냈다.
집에 오는 길에 다시 그 '감'을 떠올렸다. 여전히 오지 않는 감이지만 아침만큼 서글프진 않았다. 감이 비운 자리를 채워주는 사람을 느껴서다.
인생 첫 북토크는 내 야심과 한계를 정확히 보여줬다. 머리를 쥐어짠들 이진민 작가님 같은 북토크는 안 된다는 자각, 달아오르는 얼굴을 내가 컨트롤할 수 없다는 한계다.
그래도 받은 과함과 흘러넘침 정도는 잘 챙겨야지 싶다. 은혜 갚은 과함을 위해 빠르고 정확하게 술 약속을 잡았다. 감이 없으면 빠르기라도 해야지.
북토크라는 세계, 이 세계가 내게 또 열릴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아직 모르겠다. 확실한 건 어느 쪽이든 간에 사람은 중요하게 남는다는 것, 그러니 매끄럽게 진행할 감이 없다한들 나따위쏭은 부르지 않기로 했다.
새로운 나를 더 파악했고, 술자리가 생겼으니 첫 북토크는 매우 성공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