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찬 알콜 라이프
남편이 두 달 내내 자정 넘어 퇴근하고 주말 출근까지 하다가 지난주 처음으로 일요일 출근을 안 했다. 기념으로 애들과 외식하고 부부끼리 2차 가서 소주 2병을 깠다.
이 남자와 같이 산지 15년 차다. 늦게까지 일하는 게 안쓰럽고 오랜만에 같이 있는 게 이리 좋을 수 있는 게 새삼 감사했다. 해 떴을 때 남편이랑 팔짱 끼고 걷는 게 뭐 이리 좋은지 스스로도 신기할 지경이었다.(심지어 술 마시기 전인데!!)
얼마 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닥 청소 간단하게 하고 골프 연습을 갔다. 끝나고 집 정리 해놓고 일하러 갔다 와서 반찬 두 개 만들고 독서 모임 책 읽다가 수영하고 오니 저녁 8시 반이었다. 아이 둘 다 운동하러 가서 집은 조용했다. 수영복을 탈탈 털어 널고 소파에 널브러져서 오후에 읽다만 책을 읽었다.
그러고 있으니 세상에서 내 팔자가 제일 좋은 거라. 아침저녁으로 운동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좋았다. 매일 소비만 하면 허무할 거 같은데 중간에 잠깐 선생 소리 들으며 일했으니 셀프 위로가 되어서 또 좋았다. 그 일이 대단한 돈을 벌어주지 못해도 그 액수에 스트레스받지 않아도 될 포지션이라는 게 또 좋았다.
남편한테 그 얘길 하면서 고맙다고 했다. 풍백 님 단톡방에서 가계 예산 짜면서 연금 계획 세운 것도 얘기했다. 남편은 이런 것까지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하다 했다. 그냥 생각 없이 써도 노후 걱정 없게 하는 게 목표라나.
응? 그건 시아버지가 정주영이어야 한다. 나는 노현정 아나운서가 아니니까 퉁치기로 한다.
내가 세운 예산에 딴지 걸지만 않아도, 예산 밖에서 뻘짓 안 해도 매우 황공땡큐다. 이 당연한 게 안 되어서 찌그락빠그락 하는 집이 많지 않은가.
그렇게 우리의 2차는 서로에게 고마워하다가 끝났다. 보람찬 알콜라이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