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럽브라이언
먹방을 본 적이 없다. 4학년 아들은 먹방을 제일 좋아한다. 새로운 음식에 관심 없는 나는 마라 떡볶이가 처음 나왔을 때도 아들의 유튜브 감상평으로 알았다. 라면 10개를 한 번에 먹는 영상 좀 보라는 아이 말에는 할 수 없이 보는 흉내만 냈다. '남이 너무 많이 먹는' 모습을 왜 봐야 한단 말인가.
그래서 '남이 많이 청소하는' 걸 넋 놓고 보게 될 줄 몰랐다. 바로 가수 브라이언의 청소 방송(아래 청방)이다.
아들은 종종 먹방을 보면서 밥을 먹는다. 그렇게 먹어야 밥맛이 더 좋다나. 나는 종종 브라이언 청방을 들으며 청소를 한다. 무선 이어폰으로 흘러오는 그의 쫑알거림이 청소맛을 한껏 올린다. 먹방이 밥맛을 돕는다는 말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대청소용으로 2~3시간짜리 영상을 만들어 달라는 댓글에 많은 공감이 달렸다. 나처럼 청소맛을 느낀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브라이언이 그렇게 열심히 청소하는 이유를 다른 인터뷰에서 봤다. 그리 유쾌하지 않은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이었다. 어쩌면 상처가 될 수 있는 기억 덕에 연예인 브라이언은 새로운 콘셉트를 잡았고 그의 방송을 보는 시청자도 즐거운 청소를 배운다.
살아가면서 겪는 일 자체는 옳고 그름이 없다. 다만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좋고 나쁨이 결정된다고 한다. 마음 편하자고 하는 말 아닌가 했는데 브라이언을 보며 내가 틀렸음을 알았다.
청소는 그 방면으로 특화된 사람만 해야 한다고 믿었다. 나처럼 특화 안 된 사람은 청소를 최소한만 하고 뭔가 다른 일을 해야 될 거 같았다. 그 이야기를 담은 <살림 못하는 완벽주의자>라는 책까지 썼으니 꽤 확고한 믿음이었다.
청방으로 내가 틀렸다는 걸 알았다. 감각적으로 집을 꾸미는 일은 특화된 재능의 영역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얼룩을 닦고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그저 내 몸을 움직일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재능씩이나 필요하지 않았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정돈이 덜 되거나 지저분한 집 환경을 둔 사람은 피로하고 우울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한다. 물론 이건 가능성이니 지저분한 집에서 피로하지도, 우울하지도 않은 사람이 분명 있겠다.
다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집에 굴러다니는 먼지가 꼭 내 모습 같아서 우울했다. 그걸 떨쳐버리려고 쇼핑이나 산책을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그 먼지를 치워야 해결될 일이었다.
청소하느라 피곤한데 피곤하지 않은 신기한 상태가 됐다. 청소보다 더 멋진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은 조금씩 사라졌다.
청소보다 급하고 중요한 일이 생기는 날도 당연히 있다. 그 일을 끝내고 집에 널브러져야 진짜 휴식인 줄 알았다. 지금은 힘들어도 내가 정한 최소한의 청소가 더 진한 휴식인 걸 안다. 이럴 때의 청소는 나를 돌보는 의식이 되기도 했다.
새로운 먹방 유튜버가 생기듯 새로운 청방 유튜버도 나왔으면 좋겠다. 먹방을 보며 입맛이 돌듯 청방을 보며 청소맛이 돌아서 내 공간을 돌보는 기쁨이 유행처럼 번지면 좋겠다.
반듯하게 펴진 이불이 기분까지 반듯하게 다림질해주는 이 상쾌함을 나만 알기 아깝다. 마음이 어그러지는 순간을 탁 잡아주는 청소기의 위이잉 소리를 나만 알기 아깝다. 이불도, 청소기도 새로울 게 없는데 청방과 같이하면 새로워진다. 그러니 청방이 널리 퍼져야 한다.
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힘은 종일 먹는다고 나오지 않는다. 때론 내 공간을 돌보는 안정감에서 오기도 한다. 청소맛 들린 나를 얼떨결에 따라한 중학생 큰 아이도 제 방이 넓어졌다고 좋아한다. 소소한 기쁨으로 딸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먹방 대신 청방의 유행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