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기억하는 AI(2)

기억의 소멸

by 음감


1.


은설이 나를 본다.

낯선 눈빛. 아니,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의 눈빛.


나는 입을 열었다.

“기억을 되찾고 싶지 않아?”

그녀는 가만히 나를 응시했다. 대답 대신, 한숨.


다시 만나게 된 지 사흘째였다.

그녀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기억을 지워버렸다.

AI 스마트링이 삭제한 데이터는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은설의 손을 잡으려다 멈췄다.

그녀의 손가락에는 더 이상 그 반지가 없었다.


2.


기억 복원 실험.

마지막 희망이었다.


연구소의 흰 벽, 희미한 전자음, 차가운 금속 의자.

은설은 장치에 연결되었다. 뇌파를 스캔하는 기계가 빛을 내뿜었다.

나는 옆에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머리 속에서 하나둘씩 기억이 복원되기 시작했다.

그녀의 표정이 변했다.


처음 손을 잡았던 날.

비 오는 거리에서 함께 뛰던 순간.

작은 카페에서 나눈 이야기들.

스마트링이 조정했던 감정들.

우리가 처음으로 멀어지기 시작한 순간들까지.


그녀가 갑자기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불안했다.

“괜찮아?”

은설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제야 알겠어.”

그녀의 목소리가 낮았다.

“내가 왜 기억을 지웠는지.”


3.


나는 믿고 싶지 않았다.

“그건 네 선택이 아니었어. AI가—”

“아니. 내 선택이었어.”


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는 차분하게 말했다.


“나는 더 이상 내 감정을 믿을 수 없었어. 스마트링이 내 감정을 조정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내가 진짜 사랑하는 건지, AI가 최적화한 감정을 따라가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어.”

그녀의 눈빛은 단호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말했다.

“그럼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면 돼.”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쓸쓸한 미소였다.

“…천랑. 넌 아직도 내가 예전의 나일 거라고 믿는구나.”


4.


이별은 조용했다.


그녀와 마지막으로 걸었다.

같은 거리, 같은 바람.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우린 예전과 같지 않았다.


“그래도 좋은 기억이었어.”

“그래… 좋은 기억이었다.”


나는 끝까지 붙잡지 않았다.

그녀가 멀어질수록, 손끝에서 사라지는 감각이 있었다.


그녀를 처음 만났던 순간, 손가락을 감싸던 스마트링의 감촉.

차갑고, 부드럽고,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그 감각이.


하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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