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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서명하면 되죠?

드디어 이혼_22

by 음감

지창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 천장을 향해 뻗은 팔, 느슨하게 벌어진 입, 이따금 거칠게 들이마시는 숨소리. 무방비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도 세화는 차분해졌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더 이상 다투지도, 견디지도 않아도 되니까. 침대 맡에 걸터앉아 한참을 바라보았다.


새벽이 지나고, 방 안에 아침이 스며들었다.

지창이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켰다. 부스스한 눈으로 세화를 쳐다보더니, 곧 얼굴을 찌푸렸다.


“이불 왜 이렇게 정리를 안 해?”


세화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침대에 걸쳐진 이불 끝자락이 그의 불만을 증명하듯 주름져 있었다.


“잤으면 개야지. 아침부터 사람 일 시키네.”


목소리에선 아직 잠이 덜 깬 나른함이 묻어났다. 세화는 가만히 그를 내려다봤다. 어제의 일들은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 지워진 듯했다. 그래, 당신은 이불 하나로 기분을 드러내는 사람이지.


세화는 아무 말 없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엌으로 가 물을 한 잔 따르고, 그걸 마시는 동안 지창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말 좀 해 봐. 듣는 사람 무안하게.”


세화는 컵을 내려놓으며 짧게 대꾸했다.


“응. 미안.”


그게 진짜 사과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건 듣는 사람의 몫이었다.




세화는 변호사 사무실이 있는 건물 앞에서 잠시 서 있었다. 손끝이 차가웠다. 하은과 통화한 후, 고민할 것도 없이 전화를 걸어 예약을 잡았다. 모든 게 단순해지고 있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비서가 웃으며 맞았다.


“김세화 씨, 이쪽으로 오세요.”


따라 들어간 방 안에는 단정한 회색 정장을 입은 변호사가 앉아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세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방에서 준비해 온 서류를 꺼냈다. 카드 명세서, 통화 기록, 그리고 하은이 보내준 사진. 변호사는 차근차근 자료를 훑어보았다. 펜 끝이 책상 위에서 가볍게 튀어 올랐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이혼을 염두에 두고 계신 거죠?”


세화는 그 말을 듣고도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변호사가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세화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그 짧은 대답 하나에 방 안 공기가 묵직해졌다. 변호사는 한 장을 넘기고, 다른 장을 살폈다. 문서 위로 손가락이 스쳤다.


“재산 분할 문제는 차차 논의하면 되고요. 다만 남편분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중요합니다.”


어떤 반응. 세화는 가만히 웃었다. 이미 예상되는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변호사는 다시 말했다.


“결정하시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보셔도 됩니다.”


세화는 손가락을 가볍게 접었다 폈다. 검은 가죽 소파에 닿은 손바닥이 서늘했다. 그 감각을 오래 느꼈다.

그리고 마침내, 손을 들어 서류 한 장을 가리켰다.


“어디에 서명하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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