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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Jul 10. 2020

나는 다시 할 수 있을까?

출판사와의 계약을 파기했다. 

   나는 스스로에 대해 별로 궁금한 게 없었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듣기만 해도 손가락 끝이 없어질 거 같다. 나는 여기 있는데 무슨 여행씩이나 간대.      


<같은 주제로 A4 한 페이지 분량의 글 70개를 쓰면 당신의 책을 낼 수 있습니다>     


온라인 카페에서 본 이 문구 하나로 나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나는 과연 70개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인가? 한 번 해볼까?      


겨울의 시작부터 입춘까지, 확인 과정을 지났다. 허덕거리며 60개를 채우니 10개는 누가 옆에서 불러주는 것 같아서 신나게 받아 적었다. 아, 나 이거 되는 사람이구나. 궁금증 해결! 


70개 쓰기 미션을 진행했던 카페에서 등업이 되고 단톡 방에 초대됐다. 몇 개의 날짜 중에서 투고 날짜를 선택하랜다. 날짜가 확정되니 기획서 샘플이 올라왔다. 참고해서 쓰랜다.      


엉겁결에 오긴 했지만 욕심이 생겼다. 내가 쓴 이야기를 출판사에서 좋다고 하면 나의 쓰기가 평타는 되는 거잖아? 출판사 목록도 준다는데 해볼까.      


일요일 오후에 기획서를 쓰고 월요일 아침 6시에 메일을 보냈다. 아이들의 아침을 준비하고 피씨와 노트북에 온라인 수업을 세팅하고 있는데 9시도 안되어 전화가 온다. 최은영 선생님이시죠?      


그 전화를 시작으로 여섯 군데의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선생님이라고도 불렀고 작가님이라고도 불렀다. 어제까지 윤서 엄마였는데 오늘 아침부턴 작가다.      


매일매일 누르는 집안일들에 한숨만 늘은 시절이 있었다. 늘어난 한숨만큼 살림 기술도 늘었다. 의도치 않게 닦인 기술로 살림이 편해진 건 맞지만 ‘살림 인플루언서’ 같은 결과물이 없었기에 살림은 그저 해치워야 할 일의 하나였다.      


그런데 그날 아침의 전화와 메일 몇 통으로 내 머릿속에서는 벌써 다음 시나리오가 돌아가고 있었다. “시부모님, 친정 부모님 다 멀리 계셔서 도움받을 데 없었고요. 모든 걸 다 제가 해야 했어요. 그러면서 나를 잃고 싶지도 않아서 부지런히 썼어요. 살림이요? 절박한 마음으로 하니 그것도 기술이 생기더라고요. 호호~” 나는 벌써 어느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의 살림 능력은 이 인터뷰를 더 매끄럽게 하기 위해서였어!      


강남 교보문고 가는 길을 검색하는 손가락 끝에서 왈츠가 흐르는 것 같다. 지하철 안내방송마저 달콤하다. 나는 오늘 무려 '작가 계약'을 하러 간다. 커피를 앞에 두고 대표와 마주 앉았다.      


"작가님의 책은 실용서예요. 아셨죠?"

"네? 성경 읽다가 느낀 점을 썼는데 왜 그게 실용서예요?"

"그 느낀 점이 실생활에 유용하게 쓰이는 지점을 만드는 게 작가의 일이지요. 에세이는 차고 넘쳐요. 저희 출판사도 에세이 해봤는데 별로더라고요. 네임 밸류 없는 작가의 첫 책은 실용서가 제일 안전해요" 

    

“전 제 돈 주고 실용서 안 사는데요?”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래, 저번 출판사는 권위 있는 도서를 100권 이상 보고 인용구를 찾으랬잖아. 그런 부자연스러운 걸 요구하진 않으니 괜찮아. 벌써 여섯 번째 미팅이잖아. 이제 그만 할 때도 됐어.      


100프로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첫 술에 배부르랴 싶다. 계약서를 다 쓰니 아까의 달뜬 마음이 다시 세팅된다. 내 이름과 ‘출판권 설정 계약서’가 무심한 듯 같이 보이게 사진을 찍었다. 프로필 사진으로 올릴까? 이 사진을 어디에 보여줘야 가장 자연스럽게 보일까? 등등을 생각하며 집에 왔다.      


이쪽을 손보면 저쪽이 무너지는, 손에 잡히지도 않는 모래성 같은 퇴고가 시작됐다. 갑자기 실용서가 되어야 하는 내 원고는 큰 그림도, 세부 그림도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도 꾸역꾸역 채워서 대표가 말한 ‘러프한 얼개’를 예정 날짜보다 일찍 보냈다.      


“지금 저희와 연결된 도매상이 부도가 나서 제가 정신이 없습니다. 정리되면 연락드릴게요”    

  

응? 부도? 이건 또 뭐지...    


오지 않는 대표의 톡을 기다리며 오소희 작가님의 글쓰기 수업 최종 에세이를 시작했다. 스타벅스 창가 쪽 높은 의자 제일 구석에 콕 박혔다. 어떤 장면에서는 찔찔거렸고 어떤 장면에서는 실실거리며 빈 화면을 채워갔다. 내 글을 읽은 작가님이 말했다.      


“은영아, 니 글에는 속도감과 리듬감이 있어. 이건 그냥 너야. 너는 계속 이렇게만 쓰면 돼.”     


속도감, 리듬감은 모든 출판사에서 공통으로 들은 말이라 그러려니 했다. 문제는 다음이다. 계속 이렇게 쓰라고?     


내가 만난 출판사들은 한결같이 "그런 감각이 있으니 그걸로 우리가 안내하는 방향을 따르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계속 이렇게만 쓰라니, 안내자 없이? 그럼 출판사의 선택을 받지 못할 텐데, 책 따위 욕심내지 말고 지금처럼 혼자 쓰기만 하라는 뜻인가?


다시 묻지도 못하고 생각의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일주일 후, 평온님의 북 토크에 갔다. 마지막에 질문을 했다.     

"그럼 원래 원고는 이 책 보다 훨씬 많았나요?"

"어유, 당연하죠. 세 배도 넘을 걸요? 여기 편집자님이 그거 골라내고 재배치하느라 고생하셨죠. 호호~“    

 

북 토크 바로 전날까지 내가 쓴 70개를 모조리 책 안에 넣겠어! 의 마음으로 비장하게 한글 파일을 들여다본 내가 너무 초라했다. 차고 넘치는 글 중에서 선별된 꼭지들이 책이 된다는, 이제 와서 보니 지극히 상식적이지만 그땐 전혀 생각할 수 없던 지점에 탁 떨어졌다. 

     

집으로 가는 외곽순환도로가 꽉 막혔다. 안 그래도 머리 복잡한데 더 짜증 난다. 그런데 지금 대시보드 너머의 이 풍경, 낯익잖아? 


라라랜드의 시작이 이랬다.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튀어나왔던 장면.

       

봉준호 감독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고 했다. 교통체증에서 노란 플레어스커트가 너울거리는 군무 씬을 뽑아내는 안목이 그가 말한 ‘창의적인 것’이다. 나는 이 군무 씬을 생각도 못한 채, <내가 개인적으로 이런 답답한 마음의 교통체증을 겪었어요>를 70개 쓴 거다. 거기에 출판사에서 전화가 왔으니 이보다 당당할 수 없는 거지. 


한 달 동안 봉 감독의 말을 방패 삼아 나만 보이는 아름다움에 취해있었다. 개인적인 것을 창의적인 것으로 승화하기 위해 그가 쏟아부은 시간은 안중에도 없었다.  

    

나의 책은 마감과 계약서와 원고가 있으니 나오긴 할 것이다. 책이 나오는 일은 종종 출산에 비유된다. 넉넉한 분량에서 선별해 넣은 책 대비, 쥐어짜서 간신히 페이지를 맞춘 나의 책은 미숙아로 태어날 거다.      


교통 체증 속에서도 칼군무를 뽑아낸 글과 그저 교통체증으로 끝난 글은 에세이와 신변잡기를 구분하는 예문으로 쓰일 것이다. 갑자기 외곽순환도로의 정체가 고마워졌다. 내가 할 일이 정해졌다.      


계약 파기를 원한다는 메일을 공손하게 보냈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역량 있는 출판사에서 좋은 성과를 이루시길 바라겠습니다’라고 더 공손한 메일이 왔다. 나의 한 달 널뛰기는 모니터 속 몇 문장으로 싱겁게 끝났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같은 말을 속으로 폄하하고 있었지만 나 역시 거기에서 자유롭지 않았음을, 오히려 나의 여행은 다르거든요! 하면서 뻐기고 싶었음을 한참을 돌아와서 알았다.      


내 속엔 내가 너무 많다는데 그걸 다 안다는 건 자만을 넘은 오만이다. 이제 감히 ‘나는 나를 알아요.’라고 하지 못한다. 대신 ‘나에 대해 궁금한 게 생기면 알아볼 실천력이 있어요.’ 정도는 확인했다.   




“엄마, 오늘도 커피 집 가서 원고 쓸 거야?”

“아니, 이제 안가. 그냥 식탁에서 할 거야”

“와, 진짜? 엄마 이제 안 나가? 엄마 짱!”     


학교 안 가는 아이들은 수시로 날 불러대겠지. 세탁기와 청소기도 말을 걸 테고 빈 냉장고도 자꾸 치근덕거리겠지. 식탁 위 노트북은 손만 뻗으면 닿는 거리지만 이들을 다 돌본 후에 닿을 수 있으니 늘 멀리 있겠지.      


나의 글은 기록되지 못하고 기억 한쪽에서 떠다니다가 그대로 없어지는 날도 많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져 올리는 게 있다면 내가 정말 잊고 싶지 않은 신변잡기일 거다. 그 개인적인 이야기에 노란색 플레어스커트를 입힐 만한 안목이 생길 때까지, 어쩌면 끝까지 안 생길지도 모르는 그 길에 다시 선다. 나는 과연 다시 투고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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