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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Sep 11. 2020

머리 묶지 마!

묶기 위해 풀다

“언니, 지금 머리 어떻게 하고 있어?”

“응? 전화하자마자 뜬금없이 뭔 소리야?”


“언니네 들렀다 집에 가려고. 언니 또 머리 묶고 있지. 일단 풀러. 알았지?”

“나 머리 안 감았는데?”


“언제는 뭐 열심히 감아? 그냥 좀 풀러”

“야! 너는 무슨!”


“히히, 나 시동 걸었어. 10분 후 도착. 끊어!”  


h가 왔다. 그녀의 머리에 닿은 식탁 조명이 일명 ‘엔젤링’이라고 부르는 부드러운 흰색 파장을 만든다. h 머리가 전지현 만큼 길었다면 ‘엘라스틴 했어요’를 해도 되겠다.      


“너 머리에 뭐 했어? 머릿결 완전 좋아 보여. 전지현이 울고 가겠어”


“으흐흐. 그치. 클리닉 받았어. 나 언니한테 중요한 할 말이 있어.


언니도
 머리 묶지 마.
    매일 풀고 지내.   


“말도 마라. 아까 머리 풀 때 머리카락 소나기 내리는 줄. 풀고 다니면 바닥 머리카락을 어떻게 감당해.”


“계속 묶으면 두피 자극 돼서 머리카락이 못 버티고 빠진대. 정성스레 감고 묶지 말고, 머리숱 지키는 기본!!”    

 

“머리 풀어헤치고 끼니는 어떻게 차려.”

“앞으로 쏟아지지 않게 집게 핀으로 살짝 고정시켜”


“운동 할 때는?”

“최대한 살살 묶어. 아예 풀고 하든가.”     


“어휴, 망나니 같겠다.”

“운동이 중요해? 머리숱이 중요해?”


“어. 당연히 머리숱이지”     


고등학생까진 짧은 커트머리, 스무 살부터는 매일 묶었다. 숱은 너무 많고 손재주는 너무 없고. 고무줄과 한 몸 되어 산지 20년이 넘었는데 묶지 말라고? 싶다가 반 이상 줄어든 머리숱을 보면 풀러야지 싶다.     


망나니로 산 지 2주 후, 친정에 잠깐 들렀다. 하루 지나고 엄마가 묻는다.      


“너 오면 바닥이 아주 머리카락으로 난리였는데 이번엔 별로 심하지 않네? 머리 뭐 했어?”  


“어? 진짜? 그저 안 묶고 풀어둔 게 다야. h가 했던 말이 맞긴 맞나봐.”       




묶어두기 위해 풀어둔다.
풀어야 묶이는 아이러니,
어디에서 시작했을까.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이 파격 선언을 했다.



자율학습 인원점검 안한다.
끝나기 5분전에만 자리에 있거라.      


오후 6시부터 9시 반, 무려 3시간 이상 ‘자율 시간’이다. 첫날은 밤9시까지 교실에 반도 안 남아있었다. 며칠 있으니 반 정도가 교실을 지켰다. 2주후 95프로가 교실을 지켰다. 묶어 둘 때는 어떻게든 나가보려고 007작전을 펼쳤는데 풀어두니 오히려 자발적으로 교실에 묶여있다. 묶여서 뭐를 했든 그건 다음 문제다. 풀어둔 우리 반은 야간 자율학습 참가율이 가장 높은 반이됐다.      


야간 자율학습 잘하던 여고생은 이십 몇 년 후 그녀의 아이들을 식탁의자에 묶어뒀다. ‘학교는 못가도 공부는 해야 한다’의 비장함이 들어찼다. 묶인 아이들은 이마를 식탁에 박고 어깨를 귀까지 올렸다. 아이들의 날개뼈가 툭 튀어나왔다. 튀어나온 날개뼈는 내 신경을 툭툭 건드리며 말한다.


  애들한테 똑바로 앉아!!
라고 소리 지를 거지?


그제야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의 마음이 보인다. 모든 학생의 날개뼈가 선생님을 건드리진 않을지언정 꼭 건드리는 몇은 있었겠구나. 그래서 다 풀어버렸구나.       


아이들과 놀이터에 나왔다. 얘네는 놀이터만 오면 날개뼈 끝에 진짜 날개가 나오나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발걸음이 저렇게 가벼울 수 없겠다. 아이들은 놀이터에 풀어두고 내 마음은 가을 하늘 어디쯤 풀어뒀다. 아이들과 나는 평화로움에 묶였다.      


날아다니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보다가도 아까 찔렀던 날개뼈가 한 번씩 말을 건다. ‘애들을 저렇게 놀리기만 할 작정이야?’ 이 소리에 화들짝 정신 차려 애들을 묶을 궁리를 하면 어느 샌가 고1 담임 선생님이 스윽 한마디를 던진다.      


너 묶여있을 때 공부 했냐?      


대답이 궁하다. 풀어헤친 머리를 베베 돌리며 다시 하늘을 본다. 아이들의 왁자지껄 소리에 밀려난 하늘이 훌쩍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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