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음감 Sep 11. 2020

애 낳을 때만큼 아프지 않았습니다.

처음 봤다.


어깨 초음파를 보던 의사가 말한다.     


“여기 하얀 덩어리 보여요? 이게 석회예요. 돌아다니며 근육 상처를 내서 통증을 만들어요. 그런데... 이쪽에 또 있네요. 여기도 있고. 왜 이렇게 많지? 안 아팠어요? 왼팔이라고 참은거예요? 이만큼 쌓였으면 꽤 아팠을 텐데”     


“아팠어요”

“아픈지 꽤 됐을 텐데 왜 이제 왔어요?”

“음, 애 낳을 때만큼 아프지 않아서..”     


 나온 동시에 후회했다. 의사도, 뒤에 대기하던 간호사들도 쿡쿡거린다. 민망함을 수습할 틈도 없이 눈물이 찔끔 났다. 몽둥이 같은 주사를 다섯 대나 맞느라.


그래도 보람찬 눈물이다. 주사 맞자마자 팔이 귀 옆에 붙을 만큼 올라간다. 내 목소리도 천정을 뚫을 기세로 올라간다.     


“어머! 이거 봐요. 올라가요. 끝까지 올라가요!!”     


의사도 자부심이 올라간 목소리다.


“병원 오길 잘했죠? 이건 일시적인 거예요. 물리치료로 석회를 깨야 돼요”     




물리치료사가 미니 프라이팬 같은 장비를 들고 왔다. 전기 충격으로 석회를 부순단다.


드드드, 터더턱,
틱티팃틱, 타닷파박,
지지직


전기고문 효과음으로 채운 40분이 지났다.


몽둥이 주사가 통증을 일시적으로 없앴다면 프라이팬은 팔을 가볍게 해 줬다. 이리저리 돌려보며 신기해하니 물리 치료사가 내 팔을 꽉 잡는다.      


“다들 물리치료 끝나면 시원하다고 이렇게 팔을 돌리시는데요. 아직은 안돼요. 아프지 않은 지점까지 천천히 올려서 10초 버티기, 아셨죠?"       


요란했던 전기고문 효과음에 비해 자가 치료는 싱거워 보인다. 그래도 운전석 안전벨트를 왼손으로 끌어올 수 있을 만큼 고쳐놓지 않았는가. 열심히 따라 해야지.


병원에서 배운대로 척추 뼈가 하나하나 바닥에 닿음을 느끼며 정성스럽게 누웠다. 발끝까지 붙여 몸을 일직선으로 만들고 손바닥은 천정을 바라봤다. 이상하다. 분명 내 몸인데 내 몸이 아닌 느낌. 흘려들었던 치료사의 말이 그제야 생각났다.      


생각보다 불편하실 수 있어요.
내 몸의 정렬을 찾는 과정이니
 어색해하지 마시고
매일 해보세요.
분명 효과가 있을 겁니다.     
이렇게 눕는건 아니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뭔가 답답해서 벌떡 일어나 보니 딱 1분이 지났다. 아니, 무슨 1분이 이렇게 길지?      


반듯하게 누운 적이 없음이 그제야 생각났다. 늘 옆으로 누워 등을 구부정하게 하고 두 무릎을 직각으로 세웠다. 무릎 사이에는 종종 쿠션을 끼웠지. 손에는 핸드폰이 들렸다. 몸은 공벌레 모양, 눈과 손가락만 바빴다.


천정 보고 누워서 핸드폰 하다가 핸드폰이 미끄러져 얼굴 셀프 펀치를 몇 번 당한 이후로 눕기의 기본은 공벌레다.      




다시 정렬을 잡아 누웠다. 오래 있어볼 작정이다.


아침 이슬이 맺히기 시작한다는 백로를 지나서일까.



가을 냄새를 꽉꽉 담은 바람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부드럽게 휘돌아 나갔다.

두 번째 바람이 들어올 때는
 조금 더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에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순식간에 숨과 버무려진 바람은
모세혈관 자리만큼 구석구석 들어왔다.

콧방울을 벌름거려
한 번 더 들이마셨다.
이번에는 일직선을 만드느라
힘이 들어간 허벅지와 고관절에
집중된 바람이다.

사타구니에 충전된 바람이
징처럼 울려 단전 아래를
밀도 높게 채웠다가
한 발씩 천천히 나갔다.

네 번째 바람이 들어올 때는
손등을 힘껏 바닥으로 밀었다.
바람은 나의 에너지가
 여기에 모여 있음을 아는 듯
손바닥 위에 가만히 앉아
서서히 스며들었다.

바람이 머물다간 나의 몸이
생경하면서도 멋지다.

바람을 품는 몸이라니!      


멋지지만 낯설다. 물리치료사의 세팅대로 누우면 어색할 거라 했지만 낯설게까지 느낄 일인가. 가만히 누워 바람 길을 보다가 알았다. ‘내 숨길을 처음 봤구나’      


날숨으로 체내 노폐물을 뱉고 들숨으로 세포에 산소를 보내고 등의 원리는 잘 안다. 원리를 따라간 적은 없다. 처음 따라가 보니 길이 있었다. 몸 안을 들여다보게 하는 길이다.


내 숨을 타고 들어온 바람이 모세혈관을 다 쫓아갈 만큼 촘촘한 길을 냈다. 이 길을 보고 있자니 내 몸의 단면적이 확대된다. 넓은 몸은 움직이기에 더 편안하다. 몸이 편하니 뭐든 버틸 배짱도 생긴다.       




뭔가에 눌린 기분이 들 때, 숨길을 먼저 찾아야겠다. 미처 찾지 못한 숨길을 찾아 몸의 단면을 더 넓히면 나를 누르던 그 무엇이 되려 눌려버리리라.


몸의 확대가 마음의 확대로 이어져 두둑한 배짱이 생기겠지. 몸을 더 들여다본다.        

이만큼 강해질때까지


작가의 이전글 머리 묶지 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