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음감 Jan 07. 2020

양자 택일에서 3번을 말하다

연대의 힘_눈썹 그려라 

오소희 작가가 그녀의 신작을 내기 전, 일정 요일에 24시간씩 초고를 공개했다. 나를 비롯한 그녀의 팬들은 알람을 맞춰놓고 신데렐라의 12시 같은 그 글들을 꼭꼭 삼키며 읽었다. 오소희 작가는 엄마의 20년(나중에 이건 책 제목이 되었다)을 말하면서 엄마의 삶이 아니라 자신의 삶도 살아야 한다고, 이게 아이와 분리된 게 아니라 둘 다 성장하는 거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 성장 방법 중 하나로 결이 같은 사람들과의 공동체를 추천했다. 그녀의 독자들은


 "작가님의 취지에는 깊이 공감해요.  
하지만 대체 어떻게 공동체를 시작해야 하죠?"


 라고 토로했고 그 말을 들은 작가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판을 그녀의 블로그에 깔았다. 어느 지역에서, 어떤 모임을 했으면 좋겠다고 댓글을 달면 다른 사람이 또 댓글을 달아서 모임을 만들었다. 단 이틀 사이에 900개 가까운 댓글이 달렸다. 댓글을 통해 연락처를 공유한 사람들끼리의 네트워크까지 생각하면 그보다 훨씬 많았으리라.      


작가가 제시한 공동체는 두 가지였다. 


첫 번 째는 육아공동체를 원하는 사람들. 말 그대로 가치관 비슷한 사람들끼리 아이를 같이 키우자..이다.


두 번 째는 활동 공동체를 원하는 사람들. 아이보다는 엄마 자신의 활동을 지지해줄 사람을 찾는 모임이다. 


이 글의 태그로 <우리는 원래 여기서 공동체였지만 온라인은 외로워, 오프라인의 따뜻함이 필요해>가 있었다.


이 말인 즉슨, 지금까지 온라인으로 상담글이 올라오면 작가가 답을 내주고 글을 읽는 독자들 또한 자기의 경험을 댓글로 나눠주는, 


웹상의 공동체는 어느정도 했으니 이제 오프라인으로 가자.


라는 의지의 표명으로 보였다.       


이 글의 목적에는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나는 이미 피곤해졌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라고? 

둘 이상 모이면 번뇌가 생기는게 인간사인데?


라고 굳게 믿는 내게 이 글은 가깝고도 멀었다. 활동 공동체에 비해 육아 공동체를 원하는 글이 월등하게 많았고 그나마 활동공동체를 원하는 글도 육아공동체를 겸하고 싶다는 글이 많았다. 학령기 이전의 아이들을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하는 이야기들은 미안하지만 내게 엄살처럼 들렸다. 


이미 삐딱해진 어미였다

학교 시험지에 비가 내리는 걸 보고도 안 흔들릴 수 있는, 

그런 육아 공동체라면 기꺼이 품을 냈을거다.


유아기를 보내면서

 "사교육에 흔들리지 않을거에요! 

여행으로 아이들의 세계를 넓혀줄거에요." 


라고 하는 말들은


'일단 겪어보고 말씀하세요' 라고 치솟는 말을 삼켜야 하는, 


이미 삐딱해진 어미였다.


영어(수학) 학원을 보내지 않는, 그렇다고 엄마표 학습을 꾸준히 하지도 않는, 남들이 보면 방임처럼 보이는 학부모의 삶을 살고 있지만 대단한 신념이 있어서 이렇게 살고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나도 응원받고 싶었다. 그렇다고 어쩌다가 보이는


 '사춘기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의 글에

 '저랑 공동체 하실래요.' 라고 말걸기엔 


거리도, 내 깜냥도 미달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들 만나고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나는 선택지에 없는 질문을 댓글로 던져버렸다. 


아이 상관없이
오로지 내 활동만 하는,
온라인으로만 하는
활동 공동체 하실분? 


튀지 않고 묻어가는게 미덕이라 여겼던 내 인생의 작은 일탈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이 일탈이 엄마의 글쓰기에 어떤 원동력이 되는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