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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Oct 07. 2020

싸이월드를 탈퇴했다

떠났던 날

2007 2.     


"은영아, 너 어디야. 할머니 하늘나라 가셨어. 너 보고 가시라고 계속 전화했는데 왜 계속 안 받아."   

  

"어? 할머니? 뭐라고? 엄마, 어디야. 응, 알아. 여기서 출발하면 한 시간 걸려."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다. 비상구 계단으로 내려간다. 내 발이 나를 못 따라온다. 좀 빨리 갈 수 없니. 계단의 깨진 모서리에 구두굽이 걸려 부러지면서 한쪽 무릎이 모서리에 찍혔다.     


주차장까지 구두를 들고 뛰었다. 운전석에 앉으면서 시동을 걸고 기어 스틱을 잡아 내렸다. 왼손으로 핸들을 잡고 오른손으로 벨트를 끌어내리면서 차도로 올라섰다.


뒤차를 확인하며 시트를 앞으로 당겼더니 무릎이 닿는 느낌이 저릿하다. 손으로 더듬어보니 끈적하고 따뜻하다. 손에 그대로 묻힌채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끼어들겠다는 수신호를 한다. 비상 깜박이를 켜고 핸들에 바짝 붙어 4차선에서 1차선까지 사선으로 가로질렀다.




할머니 있잖아. 내가 오늘 오전에 진짜 할머니 만나러 갈 생각이었어. 석 달 동안 주말 없이 일하다가 오랜만에 오전 일정이 비었거든. 왜 그렇게 일만 하냐고? 왜긴 왜야. 돈 버느라 그러지. 나 시집을 못 갈 거 같아. 그러니 벌 수 있을 때 확 벌어야지.     


아니, 이 말을 하려는 게 아니고. 오랜만에 오전 일이 없으니까 싸이월드가 하고 싶더라? 30분만 하려고 했는데 걔네가 얼마나 잘 만들어놨는지 정신없이 헤매고 노느라 밤을 새 버렸지 뭐야. 새벽이 되니 그제야 졸리더라고. 그래서 잠깐 잔다는 게 너무 많이 자버렸어. 미안해 할머니.   


이 좌회전을 받으려고 차선을 네개나 건넜는데 신호는 빨간불로 바뀐다. 급제동으로 섰다. 젠장. 시야가 자꾸 흐려져서 눈을 쓱 닦는다. 손등의 마스카라 자국과 손바닥의 핏자국이 데칼코마니 같다.      




화장터를 같이 운영하는 장례식장 전광판에 할머니 이름이 떴다. 할머니가 누워있다는 저 기다란 원통이 느릿느릿 빨려 들어간다. 손잡이만 남기고 끝까지 들어가자 옆의 숫자가 빠르게 올라간다. 숫자가 멈추자 원통 아래 넘실거리는 불꽃이 보인다. 저 원통 옆의 직원에게 말하고 싶다.  


‘나 아직 할머니 대답 못 들었어요. 우리 할머니 말 못 해도 내가 옆에서 뭐라고 떠들면 가만히 보거든요. 그때 내가 ‘우리 강아지, 졸릴 땐 자야지. 오랜만에 쉬는데 놀 수도 있지’ 이렇게 할머니의 대사를 해주면 돼요. 그럼 내가 오늘 아침에 왜 못 왔는지 말할 수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줘요'  


분명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밖으로 나오는 건 꺽꺽대는 소리가 전부다. 슬리퍼를 신고 있는데도 발목이 꺾여 중심을 잃었다.


본가에 가서 쉬다가 올라오라는 엄마 말을 뒤로 하고 혼자 자취집에 왔다. 싸이월드를 탈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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