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의사면 다야?

둘째의 언어치료 #2

by 음감

반경 10km 내의 아동발달 센터 목록을 뽑았다. 큰애 하원 전에 집에 올 수 있는 센터 중심으로 상담을 예약했다.


카시트에 앉은 아이가 호들갑스럽게 “엄마~” 한다. 차에서 저런 톤으로 부르는 건 타요 버스가 있다는 뜻이다. “타요 안녕~ 현수 왔어”라고 내가 말할 차례다. 말하기 싫다. 애가 엉덩이를 들썩이며 급하게 “엄마~”를 다시 부른다. 지나가기 전에 빨리 인사하라는 소리다. 나는 인사대신 소리를 버럭 질렀다.


“니가 좋아하는 버스니까 니가 인사하라고. 왜 자꾸 엄마한테 시켜!!”


아이는 잠깐 멈칫 하더니 이내 울기 시작한다. 나는 내 앞에 끼어들려 하는 차에게 경적을 울리며 울음소리를 감춘다.


대학병원 의사면 다야? 당신이 한 말 책임질 수 있어? 이게 진짜 내 탓이야?


분노를 쏟아내는 대상은 의사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애랑 24시간 붙어있으면서 이상한 걸 몰랐던 나에 대한 분노이기도, 매뉴얼로만 가는 의사에 대한 분노이기도, 앞에서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초보운전에게도 그저 다 분노였다.

며칠동안 센터 투어를 했다. 이동 중엔 여전히 타요 버스가 보였다. 나는 괴성, 침묵, 반가운 인사의 세 버전을 내키는 대로 돌렸고 아이는 울다, 짜증내다, 좋아하다 를 반복했다. 내 센터를 먼저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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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센터의 상담은 놀라울 만큼 비슷했다. 너네도 매뉴얼이 있구나. 아이에게 맞는 센터를 찾을 수 있는 건지. 기대를 버리고 그냥 제일 가까운 데를 가야하나. 하면서 그날의 마지막 센터에 들어갔다. 늘 그렇듯 간단한 설문지를 작성하고 아이 혼자 들어갔다. 30분 후에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어머니, 현수는 좀 특이한 경우예요. 보통 이정도 발화면 인지에도 문제가 있는데 인지는 나이보다 훨씬 높아요. 그리고 아/이 같은 모음을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하네요?”


“어머 선생님! 그게 보이세요? 진짜 보이세요? 진짜 다양하죠? 맞아요. 우리 현수가 그래요! 선생님 수업은 언제부터 되요? 바로 시작 되요?”


“아... 예... 어머님... 말 없으신 분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봐요? 호호, 그런데 제가 가능한 시간은 수요일 오전 9시밖에 없어요. 시간이 좀 그렇죠. 편하신 시간 선택하시면 가능한 선생님 있는지 알아봐 드릴게요. 저희 센터 선생님들이 경력 10년 이상의 베테랑이고..”


“아뇨, 됐어요. 선생님 시간에 무조건 맞출게요. 오전 9시요? 괜찮아요. 오전 7시도 올 수 있어요”


“호호, 어머님 말씀 재밌게 하시네요. 그럼 여기 등록카드 좀 써주시겠어요?”


센터 문을 열고 나왔다. 아까까지 날카로웠던 바람마저 순해진 듯 등 뒤로 닿는 바람이 동그랗고 명랑하다. 남편에게 전화했다.


“응, 적당한 센터 찾았어. 별로 안 멀어. 오늘 일찍와. 올 때 저녁거리 사와. 애들 것도 같이”


결혼 후 처음으로 일찍 오라고 통보했다. 처음있는 일인지라 남편은 묻지도 않고 저녁거리를 가득 사들고 6시 반에 집에 왔다. “이거 한 번 먹어봐” 라는 그의 말을 뒤로하고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열여섯 시간을 내리 잤다.



1년 2개월의 치료가 끝났다. 아이는 이제 8살이다. 워낙 말이 많아진 탓에 자기가 언어치료를 했다는건 잘 모른다. 그저 어릴 때 장난감 많은 마이쭈 선생님이 있었다는 정도를 기억한다.


7살때였나. 갑자기 마이쭈 선생님이 보고싶단다. 혹시나 해서 전화해봤더니 그 앞건물로 확장이전 하셨다고. 케익을 사들고 만나러 갔다. 아이는 훌쩍 컸는데 선생님은 그대로였다. 주책맞게 눈앞이 뿌예졌다.


"어머니 왜 또 울어요. 치료 한참 할 때는 로비에서 주무시고, 끝나는 날은 통곡하고, 오랜만에 봤는데 또 우시네요?"


선생님의 장난에 울다 웃다 옛날 생각이 난다. 앉지도 일어서지도 못하고 로비에서 전전긍긍했던 첫 수업. 어느순간 마음이 편해져서 애 들여보내자마자 소파에서 깊은 잠을 잤던 순간, 자고 있는 나를 아이가 '말로' 깨웠을 때의 감격 등등.


마이쭈 선생님은 아이의 첫 선생님이다. 이제와 보니 어린이집도 안가는 독박육아의 선물이었나보다. 오늘만큼은 종일 떠드는 아이의 목소리가 싹을 틔우는 봄빛처럼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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