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먹는 걸 둬도 계모는 아닙니다

놀이터 잔혹사

by 음감

"쟤 봐라. 애들 어릴 때는 흙도 먹으면서 커야 면역력이..."

"어휴, 엄마 모르는 소리 하지 마. 옛날이랑 지금이랑 같은 흙인 줄 알아"


뒤에서 나는 소리에 흘끗 돌아보니 거의 막달인 임산부와 친정엄마로 보이는 사람 둘이 나와 현수를 보고 있다. 친정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내게 웃으며 말을 건다.


"아니 애기 엄마, 요새 사람 같지 않은 스타일로 키우네. 맞아. 애는 저렇게.."

"그만 좀 가자고!"


임산부가 엄마를 쿡 찌르더니 끌고 간다.


'저기요? 당신들만 말하고 가면 나는요? 안 들리게 말하든가. 말을 걸지 말든가'




큰 애 4살, 놀이터의 "집에 안 갈래" 병이 말기쯤으로 치달았다.

(할 말이 없다. 나는 중3까지 놀이터에서 놀았;;; 유전인가)


2월 생인 둘째는 50일부터 아기띠에 매달려 놀이터에 따라다녔다. 그때 살던 아파트 놀이터는 35년 된 아파트라 모래 놀이터다. 모래에 유모차 바퀴가 빠져서 움직이기엔 불편하다. 늘 아기띠를 하고 나갔다.


애가 어릴 땐 버틸만했는데 문제는 7개월, 기어 다니면서부터다. 둘째는 자길 내려놓으라며 아기띠에서 몸을 있는 대로 뒤로 젖히고 소리 지르며 버둥거린다.


"현수야, 여긴 걸음마하는 사람만 놀 수 있어. 아직은 안돼"


달래고 어르고, 장난감을 쥐어줘도 막무가내다. 큰애에게 집에 가자고 해도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아기띠 하고 뛰어가서 돗자리를 가지고 나왔다. 9월이지만 한낮의 햇빛은 여름의 그것과 별반 차이 없다. 큰애를 놓고 뛰어갔다 오느라 급한 마음까지 더해져 내 몸에서는 젖 냄새 섞인 시큼한 땀냄새가 난다.


일단 돗자리를 깔고 현수를 내려놨다. 버클을 풀기 전까지 소리 지르던 애가 돗자리에 지 손바닥이 닿자마자 방긋방긋이다.


"엄마~ 이것 좀 잡아줘!"


미끄럼틀과 연결된 밧줄을 잡아달라고 큰애가 부른다. 7개월 현수를 돗자리 가운데 놓고 후다닥 뛰어가서 밧줄을 끌어온다. 끌면서 현수를 보니 돗자리랑 1미터쯤 떨어져서 열심히 기어가는 중이다.


"현수야! 어디가!!"


다시 뛰어가서 현수를 돗자리에 데려다 놨다. 돗자리를 벗어나기 전에 뭘 했는지 이미 돗자리에도 모래가 가득이다. 한 손으로 아이를 들어 옆구리에 끼고 한 손으로 돗자리를 털어 다시 깔았다. 아이는 바닥에 내려오자마자 헤헷~ 소리를 내며 또 열심히 기어간다.


"엄마, 이 밧줄!"


큰애가 또 부른다. 이번엔 둘째를 옆구리에 끼고 밧줄을 잡아주러 간다. 포박당한 둘째가 또다시 괴성을 지르며 버둥거린다. 순간 균형을 잃고 휘청했다가 발목만 살짝 접질리고 넘어지진 않았다. 너 7개월 아니니. 이건 7개월의 목소리도, 힘도 아닌데.

접질린 발목으로 애를 옆구리에 끼고 가다가 둘 다 다칠 것 같아서 돗자리에 다시 내려놓고 밧줄을 잡아주러 갔다. 예상대로 아이는 힘차게 기어 돗자리 너머로 행군한다. 쫓아갈 힘도 없어서 그저 뒤에서 보고만 있는데 갑자기 휙 돌더니 털썩 앉는다. 지 손을 유심히 본다. 이상하겠지. 수많은 알갱이가 촘촘히 붙어있으니.... 아, 맞다. 설마...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지. 애도 안 낳은 이승환은 어떻게 그걸 알고 이런 노래를 불렀을까. 아이는 이상한 손바닥을 확인 중이다. 입.에. 넣.어.서.

"악!! 현수야 그러는 거 아냐!! 손 빨지 마!!!"


발목도 잊고 뛰어가서 애 손바닥을 털었다. 이미 침 범벅이 돼서 잘 안 털어진다. 가방으로 다시 가서 물티슈를 꺼낸다. 그 사이 다시 손을 빨고 있다. 물티슈의 물기가 마르기도 전에 다시 땅을 짚는다. 물티슈로 닦은 아이 손을 내 옷에 다시 문지른다. 의미 없다. 저쪽에서 큰애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아아아아~~~"


둘째로 분주한 나를 보고 혼자 밧줄을 잡겠다고 버둥대다가 넘어졌나 보다. 아이 이마와 콧잔등, 턱까지 모래가 묻었다. 입에도 들어갔는지 혼자 퉤퉤 거리며 나를 부른다. 물통을 주면서 입을 헹구라 하고 얼굴과 옷을 털어줬다. 큰애는 큰애 나름으로 서럽다.


"이렇게 하면 밧줄 잡을 거 같은데 안됐어"

"그랬쪄. 속상했쪄. 그래도 씩씩하네. 혼자 해보려고 하고"


큰 아이에게 그랬쪄 신공을 펼치며 눈은 작은 아이를 쫓는다. 기특하게도 돗자리 방향으로 다시 기어 오는 중이다. 입 주변은 이미 모래 범벅이다. 나는 절뚝거리며 와서 돗자리에 털썩 앉았다. 둘째는 돗자리로는 안 들어오고 주변만 기어 다닌다. 기어 다니다 모래 보다가 모래 빨다가. 그즈음 임산부와 친정엄마의 대화를 들었던 것 같다.


'저도 알아요. 이 모래랑 옛날 모래는 다르겠죠. 저도 큰 애 하나일 때 이러지 않았답니다. 그렇다고 둘째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에요'


라고 말하지 못했다.




모래바닥에 한 번 엎어진 큰애가 기분이 나빠졌는지 집에 가고 싶단다. 얼씨구나. 내가 딸은 잘 낳았네. 그래 들어가자. 얼른 아기띠를 해서 둘째를 집어넣는다. 이게 무슨 봉변이냐 싶어 버둥거리는 아이를 못 움직이게 버클을 확 당긴다. 억울해 죽는다고 운다.


"그랬쪄, 우리 현수 속상했쪄. 근데 누나가 집에 가고 싶대. 누나가 가면 우리도 가야지?"


한 손은 큰애 손을 잡고, 한손은 아기띠 궁둥이를 토닥이고, 백팩에 돗자리를 아무렇게나 쑤셔넣어 일단 집에 왔다. 얼른 욕조에 물을 채우면서 애들 옷을 벗긴다. 기저귀속에도, 겨드랑이 사이에도 모래가 촘촘하다. 큰 애는 장난감과 함께 욕조에 넣어주고 작은애를 안고 화장실 바닥에 철푸덕 앉았다. 작은애 입에 손가락을 넣어 모래를 하나씩 빼낸다.


"현수야, 엄마 물면 안 돼. 잇몸으로 물어도 아프거든. 살살 하자. 엄마 살려줘"


말도 안 되는 가락을 붙여, 하고 싶은 말을 노래로 만들어 부르며 애 혼을 뺀다. 헤벌레~ 하며 나를 보는 동안 입속의 모래를 급히 빼낸다. 노래 약발은 5분도 안 갈 테니.


역시 5분도 안돼서 다시 버둥댄다. 욕조에서 첨벙거리는 누나한테 가고 싶겠지. 물을 조금 빼놓고 둘째도 욕조에 넣는다. 그제야 욕실 거울에 비친 나를 본다. 이 거지 아줌마는 누구세요.

이런 욕실이었으면 덜 힘들었을까


둘째는 그 후로도 몇 번 기어 다녔고, 몇 번 더 모래를 먹었다. 비슷하게 말을 거는 할머니, 할아버지, 할줌마도 있었다. 대답은 한 번도 안 한 거 같다. 그냥 좀 지나가세요. 만 마음으로 외쳤다.


모래판을 기어 다니던 아이는 1학년이 됐다. 이젠 우레탄 놀이터 바닥을 무릎으로 다니는지 기모 바지 무릎을 죄다 구멍 내온다. 나는 가위로도 잘 안 뚫리던데 넌 힘도 좋다,라고 하진 못했다. 모래 먹는 거보다 낫지 않은가.


"괜찮아. 엄마가 안 보이게 꼬매 줄게. 어차피 한철 지나면 짧아져서 못 입는 바진데 뭐 어때.(중고로 팔지 못하는 게 아깝구나 얘야)"

20201120_121622.jpg 어설픈 바느질




제 잘나서 큰 줄 알고 떵떵거리던 어느 아가씨는 어느 한순간도 돌봄 없이 클 수 없었음을 서른 중반이 넘어서야 깨닫는다.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뭔지 문자 너머의 뜻을 이제야 알 것 같다. 그 너머를 얼마나 더 빡쎄게 알아야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될까.


독박육아가 아니었으면 아직도 나 잘나서 컸다고 헛소리를 했을까. 다행인것 같기도, 왜 나만 이리 빡쎄게 깨닫는지 억울하기도 한 하루가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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