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편한 길이 많은데

굳이 올라가는 너에게

by 음감

11월의 어느 토요일. 남편은 하루 종일 재택근무다. 5분에 한 번씩 전화벨이 울린다. 부장님, 차장님, 무슨 대리 무슨 대리 등등. 통화하는 사람이 많기도 하다.


남편은 거북목으로 노트북과 합체되어 주방 식탁을 차지했다. 불쌍한 사람. 아이들이 떠드는 것도 괜히 눈치 보인다. 이럴 땐 나가는 게 상책이지.

밖에서 3시간을 놀았다. 물론 나는 마지막 1시간만 나가 있었다. 이제 1학년 씩이나 됐으니 놀이터에서 하염없이 보초 서는 일은 안 한다. 아니 못한다. 큰 애부터 시작해서 10년 꽉 채웠으면 이제 안 해도 될 듯싶다.

집에 오는 길, 멀쩡한 길 놔두고 꼭 어딜 올라가야 직성이 풀리는 건 모든 아이들의 공통인가. 이제 길바닥의 나뭇가지, 돌멩이가 말을 거는 대신 뭔가 올라가야 하는 것들이 8세에게만 들리는 초음파를 보낸다.


내가 여기 있어.
내게 올라와야 하지 않겠니

제게만 들리는 초음파를 충실히 듣는 아이다. 거긴 그냥 난간인데 왜 굳이 올라가니..라고 물을 수 없다. 니들만 들리는 초음파에 내가 무슨 토를 달겠니.

깁스는 풀었지만 부기가 가라앉지 않는다. 부은 왼발이 빨갛다. 여전히 절뚝거리며 걷는다.


이런 엄마 발이 신경 쓰여서 "어머니, 속히 들어가십시다" 하면 니가 좀 이상한 거겠지. 그래서 나는 그저 기다린다. 길 없는 곳에서 길을 개척하는 아이를.

난간 탐험이 끝나고 길로 돌아왔다. 돌아와도 편한 가운데 길보다 기여코 끝으로만 가는 아이.


엣지 챙기는 중이니. 그렇다고 믿으마.

다시 들린 초음파. 다시 올라가는 아이.

이때부턴 왼발에 감각이 없다. 금방 들어온다는 생각에 양말을 안 챙겨 신은 내 탓이다. 들리는 초음파에 성실히 대답하는 니 탓은 절대 아니다.


나 혼자 가면 벌써 집에 갔겠다... 를 10년째 중얼거린다.




약속을 잡지 않았다. 애들과 움직이다 보면 어디에 꽂혀 시간을 보낼지 알 수 없었으니까. 주로 나뭇가지와 돌멩이, 개미, 공벌레 등이 발길을 잡았지만 생뚱맞게 비닐 봉다리, 공사장 트럭 때문에 갈길을 못 간 적도 많다.


그래서 약속이 없었다. 약속이 없으니 친구도 만날 일이 없다. 가다가 우연히 만나면 반갑고 아님 말고. 약속이 없으니 개미도 하염없이 보고, 어디 기어올라가기도 하고, 돌멩이를 모으기도 하고. 가방은 온갖 돌멩이와 나뭇잎의 쓰레기통이 되어가고.


독박 육아를 스스로 자초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자연스레 시간을 보내려면 당최 누구랑 만날 수가 없다. 대신 여유가 있었다. 빨리 가야 한다고 끌고 갈 일도, 그러느라 당 떨어질 일도 없다.


이젠 제법 컸다고 친구랑 약속도 한다. 약속하느라 시계 보는 법도 혼자 깨우쳤다.(에미의 빅픽쳐. 안 갈쳐줌.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거라) 그렇게 친구랑 놀다 오는 길인데도 혼자서는 또 초음파를 듣는다. 들을 수 있을 때 많이 들으렴. 듣고 싶다고 다 듣는 건 아닐 테니.




대단지 아파트에 살면 필연적으로 마음 급해지는 이런저런 말들이 한 번씩 휘몰아치고 간다. 논술도 빨리 시작해야 할 거 같고 악기 하나는 기본이지 싶다.


그런 날엔 아이만 듣는 초음파를 상상한다. 니들에게만 들리는 초음파를 지켜주려면 시간이 좀 널널해야겠지. 시간표 맞춰 뛰어다니면 안 들릴지 몰라.


휘몰아치던 마음이 상상의 초음파로 조금씩 잦아든다. 잦아들기만 하지 아예 없어지지는 못하는 바람이다. 뜨거운 커피와 달콤한 초코로 바람을 살살 달래 본다.


도심 아파트에서도 불규칙한 풀벌레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린다. 마음 속 바람은 속시끄럽지만 겨울을 품은 바깥 바람은 소리 사이를 매끄럽게 지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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