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남편은 여전히 재택근무 중이다. 차라리 출근을 하면 평일 대휴라도 주는데 재택근무는 밤 12시까지 해도, 휴일 근무를 해도 아무것도 없다. 인사고과 평가 기간이라 더 신경이 곤두선 남편이 불쌍하기도 하다. 먹고사니즘의 슬픔이여. 애 데리고 나가주기라도 해야지.
둘째가 2시 반에 무려 8명의 친구+형아들 과 놀이터에서 만나기로 했단다. 반가운 말이지만 믿을 수가 없다.
"확실해? 진짜 약속했어?"
"진짜야. 다 나온대"
15분 전부터 나가서 대기 중, 45분이 돼도 한량없이 조용한 놀이터.
번호 아는 두 명의 엄마들에게 송구스럽게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다.
"현수야, 원래 일요일은.. 쫌... 그래"
(너 같으면 이렇게 쌀쌀한 -- 절기로 하면 소설 -- 날에 놀이터에 굳이 나오겠니)
"다른 놀이터 가보자"
가는 길에 다행히 다른 친구 한 명을 만났다.
갑자기 어제저녁의 일을 말하더니 정원으로 데려간다. (거기 들어가도 되는거니?)
어젯밤 7시. 이미 해가 져서 캄캄한 배드민턴 장.
탁구공보다 작은 탱탱볼로 5학년과 1학년 두 명이 공놀이를 한다. 공은 두 번을 채 넘기지 못하고 정원으로 굴러가 버렸고 아이들은 핸드폰 손전등을 켜서 공을 찾았다. 공놀이가 목적인지 공 찾기가 목적인지 모르겠다. 두 번도 못 넘길 거 왜 하니.
1학년은 그렇다 치고
5학년도 그리 열 내면서 찾을 일이니?
날도 추운데 집에 가지?
라고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꾸역꾸역 밀어 넣고 폰만 빌려줬다. 폰 없이 기다리려니 더 지루하다. 몇 번은 용케 찾더니 마지막 판에서는 못 찾았다. 그 못 찾은 공을 오늘 또 찾는 중이다.
그렇게 작은 공으로
이렇게 넓은 데에선
공놀이가 안된다고!!
마음의 소리를 또 꾹꾹 누른다. 내가 하면 꼰대 잔소리일 테니. 니들이 깨닫거라.
다행히 금방 깨닫고? 포기하고? 놀이터에서 축구를 시작한다.
저 구멍에 공을 먼저 넣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란다.
그래, 이런 게임은 아줌마도 수긍할 수 있어.
몇 번 공을 넣더니 이건 아닌 거 같단다.
아니긴 뭐가 아니니. 그 몇 번도 간신히 성공했잖니... 너네 수준은 그게 딱이야... 니 자신을 알거라. 이것들아!
공이 구멍을 두 번 통과할 때까지 해야겠단다.
저기, 니들은 박지성이 아니란다?
아까 하던 거 마저 하지 그러니?
나는 마음의 소리만 늘어간다.
공을 한 번 차서 구멍을 두 번 통과하는 게 당연히 안 되겠지. 저 애는 그래도 해보겠다고 저리 노력하는데 내 새끼는 그네에 저런 포즈로 매달린 거 보니 그것도 꼴 보기 싫다.
너는 해보겠다는 끈기도 없니
해도 불만, 안 해도 불만. 내가 제일 나쁘네.
평일에는 돌아다니는 친구들도 많으니 그러려니 하지만 일요일은 놀이터도 황량해서 그냥 두고는 못 들어오겠다. 계속 쫓아다니기는 하는데 하는 짓마다 뻘짓같다. 차라리 들어가서 책을 보거라 아들아.
그런데 보다보니 낯익다. 어디서 많이 본 뻘짓이다.
응? 저 뻘짓은 나잖아....
작곡을 한다고, 글을 쓴다고 맨날 컴퓨터랑 싸우는 나야 말로 뻘짓의 원조다. 세상에 음악도 글도 잘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 속에 들어가보겠다고 버둥거리는 짓이 뻘짓 아니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미의 뻘짓을 아이들은 그냥 우리 엄마는 저런 사람이려니.. 하고 별 말 안한다. 이제와서 고마워지네.
마흔 몇 살의 뻘짓이 여덟 살의 뻘짓보다 중하다고 누가 단정지을 수 있을까. 뻘짓은 뻘짓이기에 비교 안되는 나름의 질량을 갖는다.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탐험하는 중인데 하마터면 나이를 무기삼아 탐험을 무시할 뻔 했다.
아이에게 배운다는 낡은 명제에 또 뒤통수 맞는다. 아이의 세계를 내멋대로 재단할 수는 없다. 아니, 재단할 재주도 없다. 집중력으로 보면 내가 아이보다 한참 아래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내일 아침에 뭘 차려야 할지 생각하고 있으니까.
아이의 뻘짓을 더 응원하련다. 행여 뻘짓으로 지금의 일정이 꼬이지 않도록 최대한 널널한 시간을 확보해주련다. 뻘짓이 죄책감이 되지 않도록.
어쩌면 이건 내게 하는 바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