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여행을 가면서 고양이 사료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이웃 몰래 먹이를 주는 탓에 대놓고 사료를 챙겨 달라고 부탁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집 앞에 사료 포대를 펼쳐놓고 가면 온 동네 고양이들이 몰려와 잔치를 벌일 테니 그것도 안 될 일. 힘없는 말라깽이가 제대로 먹을 리 만무이고 이웃들로부터 원성만 들을 일이었다. 뾰족한 방법이 없어 고민만 하다가 그냥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가서도 말라깽이가 걱정되었다. 프랑스에 살고 있는 친구의 오동통하게 살찐 고양이가 집 안팎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걸 보니 더욱 생각나고 불쌍하게 느껴졌다. 먹이는 제대로 찾아 먹고 다니는지, 다른 힘센 고양이들이나 새끼들에게 시달리지는 않는지....
여행에서 돌아와 한 달이 다 지나도록 말라깽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매일 목이 빠져라 기다렸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말라깽이야, 어디 있니? 왜 오지 않아?”
가끔씩 혼잣말을 하곤 했다.
5월 하순, 우리가 여행 간 사이 우리 집에 와서 객토도 하고 식물에게 물도 주었던 여동생 가족들이 와서 식사를 했다.
"언니, 요즘 말라깽이 와?“
"아니, 아직까지 한 번도 온 적 없어. 그래서 많이 걱정돼.“
“집에 왔더니 거실 앞 데크에 죽은 새 한 마리가 놓여 있었어.”
“웬 새? 지금까지 그런 적 없었는데...”
“고양이는 영물이라 자신에게 잘 해준 사람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쥐나 뱀을 잡아서 갖다 준대. 말라깽이도 고맙다는 뜻으로 새를 갖다 놓은 게 아닐까?”
“그랬을까?”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식사하는 내내, 동생 식구들이 돌아간 이후에도 동생의 말이 계속 귓전을 맴돌았다. 도통 나타나지 않는 걸 보면 아무래도 무슨 큰 탈이 난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남편과 식사를 하다가 말라깽이를 생각하며 결국 눈물 바람을 했다.
“아무래도 작별 인사하러 왔었나 봐요.”
“자신을 거둬준 것에 대한 고마움으로 새 한 마리를 잡아다 놓고 간 게 틀림없어요.”
38일간이나 열리지 않는 우리 집 거실과 부엌 통 창문을 바라보며 말라깽이가 얼마나 배고프고 힘들었을까? 우리 땜에 굶어 죽은 것 같아 너무 안쓰럽고 미안했다.
며칠 후 낮에 마당에서 화분 정리를 하고 있는데 남편이 부엌 옆 통 창문을 두드렸다. 말라깽이가 와 있다고 보란다. 얼핏 봐서는 말라깽이가 아닌 다른 고양이 같았다. 안경을 끼고 다시 보니 말라깽이였다. 부엌 앞 데크 테이블 아래 앉아 야옹거리고 있었다. 순간 너무 반가웠다.
“야, 인마! 그동안 왜 오지 않았어? 네가 죽은 줄 알았잖아?”
다른 고양이들은 사람이 나타나면 도망가는데 말라깽이는 두 앞발을 비비면서 우릴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그동안 오지 못 한 것에 대해 잘못을 비느라 두 손을 비비는 것처럼. 자세히 보니 예전보다 더 말랐고 거친 털이 더욱 지저분해진데다 많이 빠져 있었다. 우리가 없는 사이 제대로 먹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반갑고 불쌍해서 사료를 한가득 주었다. 다 먹고 나서는 테이블 아래 그늘에 누워 쉬고 있었다. 햇빛을 피해 요리조리 옮겨 다니더니 햇빛이 데크를 다 점령하자 사라져 버렸다. 한참 뒤에 마당에 나갔던 남편이 반송 나무 그늘에 말라깽이가 누워있다고 했다. 더위를 피해 그늘을 찾아 옮겨 다니다가 반송 나무까지 간 모양이었다.
그 후 한참이 지난 어느 날 낮에 말라깽이가 다시 나타났다, 너무나 더운 날씨에 기진맥진했는지 울지도 않았다. 전보다 털이 더 많이 빠져있고 더 마른 모습이었다. 잊지 않고 와줘서 고맙고 반가워 사료를 듬뿍 주었다. 주위를 경계하며 먹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어느 날 늦은 저녁 식사를 하는데 부엌 앞 데크에서 말라깽이의 새끼인 노랑이가 우렁찬 목소리로 울어댔다, 줄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 결국 사료를 주었다, 그날 이후 매일 저녁 식사 시간이면 어김없이 노랑이만 나타나 음식을 요구했다. 주면서도 어미가 새끼에게 양보했나 아니면 힘이 약해 새끼에게 밀렸나 별생각이 다 들었다.
어미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새끼만 나타나는 이 상황이 너무나 답답했다. 유튜브와 백과사전에서 길고양이의 생태를 검색해 봤으나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볼품없이 마르고 털이 듬성듬성 빠져버린 말라깽이가 걱정돼 오늘도 애를 태우고 있다.
‘말라깽이야, 제발 우리 집에 계속 와.‘
‘내가 보살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