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깽이와 노랑이

by 촛불 맨드라미

작년 시월, 서울 나들이를 위해 역으로 가는 길이었다. 우리 집에서 300m쯤 떨어진 새로 이사 온 집 마당에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앉아 있었다. 마치 자기네 집인 양 편안하게! 자세히 보니 바로 말라깽이의 새끼들이었다. 어느 날인가부터 전혀 보이지 않던 말라깽이와 똑같은 털을 가진 한 마리와 노란 털을 가진 두 마리!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길이 없어 무척 걱정했는데... 셋 다 몸집이 제법 커져 있었고 또랑또랑해 보였다. 건강하게 잘 자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저렇게 잘 자라고 있었는데 나만 걱정한 것 같아 억울한 생각까지 들었다.

올해 삼월 초, 말라깽이와 새끼 노랑이 한 마리가 우리 집 텃밭에 나란히 엎드려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앞으로 살아갈 방법에 대해 교육하는 걸까?’

‘아님 독립하기 전 부모 자식 간의 마지막 정을 나누는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몇 시간 동안 그러고 있었다.

한참 후 말라깽이와 노랑이가 음식을 청하러 왔다. 사료를 내주러 나갔더니 노랑이는 도망가 버렸다. 말라깽이는 사료를 먹으면서도 연신 노랑이가 도망간 쪽을 바라보았다. 결국 다 먹지도 않고 새끼를 찾으러 갔는지 돌아오지 않았다. 그 뒤로 다시는 그 노랑이도 다른 새끼들도 볼 수 없었다. 그 집에서 잘 살고 있겠거니 내심 안심하고 있었다.

한 달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어느 날, 말라깽이는 오지 않고 노란 털 새끼 고양이만 나타났다. 쪼그리고 앉아 거실 앞 통 창문 방충망을 사이에 두고 노랑이와 대화를 시작했다.

“네 엄마는 어디에 있니?”

“왜 너만 나타나? 엄마랑 같이 오면 좋잖아.”

말귀를 알아듣는지 내가 말할 때마다 새끼 고양이는 야옹거렸다. 마치 아기가 어르는 엄마에게 옹알이하듯. 그 후로 노랑이는 우리의 간을 보는지 데크에 한참 앉아 있다가 우리가 나가기만 하면 도망쳤다.

어느 날 밤 노랑이가 부엌 앞에 와 서서 큰 소리로 울었다.

“너보단 네 엄마가 더 보고 싶은데 왜 너만 왔어?”

사료를 주지 않고 계속 말을 시키자 가버렸다.

아무래도 말라깽이가 자기 영역인 우리 집을 새끼 노랑이에게 넘겨준 듯했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하다 말고 남편에게 말했다.

“고양이도 모정이 대단한 것 같아요. 아무래도 말라깽이가 약한 노랑이에게 우리 집을 넘겨준 모양이에요.”

“야생 동물에게 인간의 감정 잣대를 들이대지 마. 어미와 새끼의 영역 싸움에서 어미가 진 거지.”

“태어난 지 육 개월 정도 된 새끼에게 어미가 영역 다툼에서 져요? 사람처럼 자식을 위한 희생정신으로 자신의 삶의 터전을 양보한 거겠죠”

이성적인 남편은 내 의견에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노랑이는 이제 한 달간의 간 보기를 끝낸 모양이었다. 매일 저녁 식사 때마다 부엌 앞 데크에 나타나서는 우렁찬 울음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사료를 주자 다 먹고 나서는 더 달라고 울어댔다. 남편이 그만 울고 가라고 내쫓아도 도망가지 않았다. 배포가 커진 탓인지 아니면 우리를 믿는 건지....

올 때마다 같이 쪼그리고 앉아 말라깽이의 행방을 물었다.

“네 엄마 제발 데리고 와!”

사료를 내주고선 답답한 나머지 방충망을 치면서 말하자 노랑이도 앞발로 나를 할퀴듯 방충망을 쳤다, 괘씸한 녀석이다. 계속 음식을 주는데도 나를 공격하다니....

도통 나타나지 않는 말라깽이가 걱정되었다.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아 가슴이 먹먹했고 이러다 영 이별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쓸쓸함마저 느껴졌다.

요즘은 작전을 바꾸어 노랑이가 와서 울어대도 쳐다보지 않는다.

‘사료를 주지 않으면 노랑이가 우리 집을 포기하겠지. 그러면 말라깽이가 다시 우리 집에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말라깽이야, 다시 우리 집에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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