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하루

by 촛불 맨드라미

그녀는 아침 7시 30분에 눈을 뜬다.

어젯밤 깔고 잔 발 매트와 이불을 정리하면서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보내리라 다짐해 본다. 수면제의 도움을 받아 충분하진 않지만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잠을 잤다.


계란찜과 큰아들이 만들어 준 마들렌 1/3쪽, 바나나가 아침 식사이다. 식사를 한 뒤 커피의 그윽한 향을 맡으며 카톡 메시지를 확인한다.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가족들과 친구, 복지관 후배들에게서 온 문안 인사에 답을 보내며 여유로운 아침을 맞는다.


즐거운 기분으로 건강이나 노년생활 관련 유튜브를 보면서 모르는 어휘나 생경한 단어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본다. ‘가스 라이팅, 디스패치, 메타버스, 디오라마’ 등....

‘음~ 이런 뜻이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에 기록한다. 2021년부터 지금까지 쭈욱 기록해온 자신만의 노트!

물론 중간 중간에 기록하지 못 한 날들도 있지만 웬만하면 기록해왔던 공부 노트이다.

그 노트가 벌써 3권 째다. 치매 예방도 하고 무료한 시간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다.


이제 피아노를 칠 시간이다.

요즘은 주로 찬송가를 친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들어온 곡들이라 멜로디가 익숙하고 4성부 악보라 지루하지 않아 좋다. 예전엔 클래식과 가곡을 자주 쳤다. 몇 년 전 노래교실을 다니면서부터는 가요도 친다. 하지만 점점 시력이 떨어져 악보를 읽기 힘들다. 이럴 걸 예견하고 , ‘소녀의 기도’, ‘사랑의 기쁨’, ‘워털루 전쟁’, ‘은파’, ‘꽃노래‘ 등의 악보를 외워 놓았다. 강약을 살려 신나게 치면서 정서적인 풍요로움을 만끽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 아파트에 사는 처지라 이웃에 피해가 가기 때문이다. 작은 소리로 치다 보니 영 재미가 없다. 시력도 떨어지고 신나지도 않아 피아노 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어 아쉬운 마음이다. 그래도 매일 피아노 친 시간을 달력에 적으며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하기를 기도한다.


점심 식사로 영양죽, 마들렌 1/3쪽, 키위를 먹고 가벼운 운동을 한다. 식탁 잡고 발뒤꿈치 들기, 벽에 아픈 엉덩이 치며 마사지하기, 안마기로 어깨, 허리, 다리 두드리기, 베란다에 나가 따뜻한 햇볕을 쬐며 걷기 등 큰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운동 위주로 한다.


다시 피아노에 앉아 30분 정도 친 뒤, 좋아하는 배구나 탁구, 배드민턴 경기를 시청한다. 가장 좋아하는 남자 배구 선수는 현대캐피탈의 허수봉, 여자 선수는 현대건설의 양효진이다. 허수봉은 실력자여서 좋고 양효진은 착해 보여서 좋다. 탁구선수 중에서는 막내인 신유빈을 좋아한다. 경기를 보면서 그녀의 특기인 백핸드 기술을 제대로 배우지 못 한 자신을 통탄해 한다. 그러다 출출해지면 뉴00 죽이나 초콜릿을 간식으로 먹는다. 냉장고에 있던 과일은 미리 실온에 내놓았다가 갈아먹는다. 차가운 음식이 위에 부담을 주기도 하거니와 치아가 부실한 탓이다.


가끔씩 큰 거울 앞에 서서 두 볼을 토닥이며 자신을 향해 살짝 미소를 짓는다.

“김 00, 곱게 잘 살았어~ 이렇게 즐겁게 살다가 가자~!”


저녁 식사는 영양죽과 과일이다.

식사 후 몸을 씻은 후 한 시간 반 동안 뜸을 뜬다. 발가락 끝이 찌르듯이 아팠는데 계속 뜸을 떴더니 통증이 사라졌고, 고혈압 수치도 내려갔다. 습성 황반 변성이라 3개월에 한 번씩 눈에 주사를 맞았는데 뜸 덕분인지 이젠 맞지 않아도 된다. 뜸 냄새로 인해 이웃에 피해가 갈까 봐 전전긍긍이지만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G패드나 TV로 좋아하는 영웅이의 노래하는 모습을 감상하면서 입꼬리가 귀에 걸린다. 95세 늙은 나이에도 영웅이 덕질을 하고 있지만 남 눈치 볼 일도 없고 혼자만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아함! 이제 잠잘 시간!

잠을 자기 위해 수면제와 발 매트를 챙긴다. 최소 용량을 먹고 침대에 누워 자장가 삼아 영웅이의 노래를 듣는다. 수면 양말을 두 켤레나 신고 잠을 청해도 발이 시리다. 딸이 사준 발 매트로 시린 발을 덥히면서 잠들지만 자다 보면 발이 시려 잠이 깬다. 저 밖으로 밀려나 있는 매트를 챙겨 깔고 다시 잠을 청한다.


마음은 밝게! 몸에는 정성을!

오늘도 즐겁게 생활한 자신을 칭찬하며 스르르 꿈나라로 간다.


그녀는 나의 롤모델인 내 시어머니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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