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모종을 사 와서 심어 놓았는데 봤어?”
“아니오~”
툭하면 서울 나들이를 하는 나는 아침에 허둥지둥 나갔다가 해 질 녘에 돌아오기 때문에 새 화분이 놓여 있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도통 관심을 보이지 않는 내게 남편은 서운함을 담은 눈빛으로 가서 좀 보란다. 미안해서 슬그머니 나가 보았더니 빨강, 노랑, 분홍의 촛불 맨드라미가 작지만 어여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난 외출하지 않는 날엔 집안에 콕 틀어박혀서 좀처럼 마당에 나가지 않는다. 보라색 라일락 꽃이 소담스럽게 피어 짙은 향기를 내뿜어도, 집 울타리에 장미꽃 봉오리가 봉긋 올라와도 알아보지 못한다. 황금측백나무 아래 샤스타데이지가 하얀 꽃잎을 펼치고 인사해도, 루드베키아가 태양을 닮은 고흐의 해바라기 노란색으로 환하게 미소 지어도 관심이 없다. 꽃의 전령인 남편에게서 개화 소식을 듣고서야 그것들을 만나본다. 그리곤 사진을 찍는다.
작년에 우리 부부와 남편 후배가 집 근처 카페에 간 적이 있다. 작은 정원이 있는 그 카페는 아름다웠다. 이름 모를 꽃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카페 안과 정원을 샅샅이 살피며 꽃들을 감상했다. 그러다 창틀 난간에서 마주친 진분홍색 꽃! 순간 강렬한 인상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마치 고흐의 사이프러스 나무처럼 생동감과 솟구쳐 오르는 정열이, 하늘을 향해 빨갛게 타오르는 듯 진취적인 기상과 희망이 느껴졌다.
촛불 맨드라미
이름도 어쩜 그 모습과 그렇게 꼭 닮았는지.... 검색해 보니 꽃의 모양이 촛불을 켠 불꽃을 닮았다 해서 촛불 맨드라미 또는 불꽃 맨드라미라고 했다. 작지만 길쭉하게 위로 솟은 꽃대에 작은 꽃들이 촘촘히 피어나 있었다. 가까이에서 봐도 곱지만 멀리서 보아도 색깔이 진하고 화려해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맨드라미는 한해살이 식물로 인도가 원산지며 여름에 꽃이 핀다. 주로 관상용으로, 씨앗은 한방 약재로 쓰이며, 꽃은 강원도에서 화전을 부칠 때 고명으로 올리기도 한다. 아프리카에서는 잎과 꽃, 열매를 먹는다고 한다. ‘맨드라미’라는 이름은 산스크리트어 Mandarava에서 차용한 것으로, 처음엔 만다라로 불리다가 맨드라미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내 어린 시절엔 이집 저집 담장 옆에 검붉은 색깔의 수탉 벼슬 같은 맨드라미가 많았다. 그땐 손톱에 꽃물들이던 봉숭아나 키 작은 채송화, 빨아먹으면 달달한 샐비어 꽃에만 눈길을 주었지 맨드라미는 무심히 보아 넘겼다. 더구나 예쁘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본 적 없었다. 그런데 이 촛불 맨드라미는 흔히 보았던 그 맨드라미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키가 더 작고 모양도 독특하며, 색깔도 다양하면서 더 선명하다. 빨간색은 그야말로 타오르는 불꽃이다.
지금까지의 삶을 반추해 보았다. 난 시골집이나 들판 여기저기에서 자라나던 검붉은 맨드라미였다. 남의 시선을 끌만큼 아름답지도 멋스럽지도 않고, 그저 피어난 곳에서 묵묵히 살다 씨앗만 남기고 사그라지는 꽃. 사람들에게 약재와 음식으로 자신을 기꺼이 내주며 생을 마감하는 꽃. 내겐 출중한 외모도 톡톡 튀는 개성도 없다. 정열적으로 뭔가에 빠져든 적도 없고, 따라서 대단한 성취를 이룬 적도 없다. 내게 주어진 환경을 헤쳐 나가느라 늘 급급했다. 그래서 내 자리에서 조용히 내 몫을 수행하면서 수더분하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을 뿐이다.
촛불 맨드라미의 꽃말은 열정, 영원한 사랑, 꺼지지 않는 희망이라고 한다. 꽃말이 주는 상징적 의미와 선명한 색, 촛불처럼 피어오르는 모양 덕분인지 촛불 맨드라미를 바라보면 긍정적 에너지가 전해져 온다. 무기력하다가도 그 강한 몸짓에 절로 동화된다. 희망을 갖고 열성적으로 살고 싶은 바람으로 나의 닉네임 ‘앤’을 촛불 맨드라미로 바꾸었다. 사랑스러운 촛불 맨드라미처럼 나도 주변 사람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사람이고 싶다.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바라보기만 해도 생동감이 느껴지는 꽃! 화려한 색깔과 강렬한 꽃 모양의 촛불 맨드라미와의 조우는 마음속에 희망의 촛불을 켜들고 열정적으로 살아보라는 의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