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 덕 본 놈들은 이런 거 하지도 않아. 라며 추석을 앞두고 남편은 어머니께 이제 할 만큼 했으니 먹지도 않는 음식 사지도, 하지 말고 먹는 것만 간단히 하자고 강력히 주장했다.
남편과 나는 마트에서 3가지 종류가 든 냉동 모둠전을 사고 산적 대신 갈비, 과일은 샤인머스캣 정도만 준비했다. 먹지도 않는 사탕이나 음식들이 냉장고에 수북이 쌓여있다가 버려지는 게 너무 싫었던 나는 간결하고 실속 있는 상차림이 썩 마음에 들었는데 어머니는 아니셨다.
어머니는 전 날까지 아무 말씀 없으시더니 당일 아침, 차례상을 차리는데 너무 불쌍하다고 하셨다.
돌아가신 자신의 남편, 하이 아빠의 아버지가 불쌍하다는 것이다. 남편은 명절 아침부터 화내고 싶지 않으니 그냥 못 들은 척 차례상을 주도적으로 차렸고 다 같이 성묘를 다녀온 것으로 그렇게 아슬아슬 추석 아침이 지나갔다.
전 날 남편에게 간단한 용건으로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는데 우리가 커피 마시러 가는 중에 차 안에서 전화를 받아 스피커 연결이 되어 있었고 전화를 끊는 말미에 전화가 끊어진 줄 모르고 팔자 좋네 하고 중얼거리시는 걸 들은 후 2연타라 나는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제사라면 나도 지긋지긋하게 겪었다. 독자인 아빠는 무슨 제사가 그렇게 많은지 매 제사마다 엄마를 도와 기름 쩐내에 신물이 올라오도록 전을 부쳤다.
아빠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는 바로 제사를 다 합쳐버렸고 설과 합동 제사만 지내자고 못 박으신 후에 추석엔 엄마와 여행을 가신다.
명절 차례상 차리는 일에서 해방됐으면 홀가분하게 여행가면 되지
엄마는 빈집에 놀러와 있을 사위와 손주가 굶기라도 할까 음식을 잔뜩 해놓고 나한테 전화해서 어디에 뭐가 있으니 하이아빠한테 얘기해서 데워 먹으라고 했다.
뭐 파랑 마늘을 좀 더 넣고 끓이고 해야하는 데 나는 못할게 뻔하고 우리집 요리사인 하이아빠한테 해달라고 하라는 거다.
엄마 아빠는 여행가고 없는 빈집에서 동생 가족과 우린 엄마가 해놓고 간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 먹고 마시고 즐겼다.
그렇게 긴 연휴가 지난지 2주 쯤 됐을까.
어머니는 같이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추석 때 고기가 너무 모자랐다고 뜬금없는 말을 하셨다. 애들이 몇 명인데. 하시며.
남편은 담부턴 누나들한테 먹을 거 각자 알아서 사오라 그래. 하고 퉁명스레 대꾸했고
나는 말을 더 얹진 않았지만, 마지막 3연타에 굉장히 유감스러웠다.
결혼 10년 차. 명절 마다 나는 음식을 하나도 안했을까?
엄마는 매 명절 시어머니께 아직도 고기와 생선을 선물로 보내고 나는 친정에 오는 시누이 식구들을 위해 10인분치 갈비를 재워놓고 갔다.
잘 먹었다 소리는 커녕, 양념이 어떻더라 이번엔 고기가 질기더라 소리만 숱하게 들었고 이제 나도 할 만큼은 했으니 손을 놓은 거다.
어머니는 무슨 대답을 바라신 걸까.
여행가면서 사위 먹인다고 며칠 장 봐서 음식 해두고 간 엄마 생각에
내가 시누이들 친정 엄마가 아니잖아? 하는 생각만 드는데 나는.
부엌데기마냥 몸이 부서저라 주방에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명절이 너무 피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