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강릉에 살았던 적이 있었다. 집은 도심에서 좀 떨어진 오죽헌 옆 동네였다. 위치 덕분에 심심하면 오죽헌 뒷문으로 슬쩍 들어가 경내를 배회하는 특권을 누리기도 했다.
오죽헌 가는 길과 반대 방향으로 쭉 걸어가면 이름 모를 저수지가 거기 있었다. 저수지는 엄청 난 규모까지는 아니었지만 넓고 고저녁한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나는 가끔 저수지까지 걸어갔다 오곤 했는데 그게 나의 유일한 운동이었다. 저수지까지 가는 길 양 옆은 보리밭이었다. 봄이 되면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긴 청보리들이 쏴쏴 소리치며 줄지어 이리저리 물결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러나 겨울에 그 길을 걸은 적은 없었다.
겨울이 되고 어느 날, 초등학교 1학년 짜리 딸의 행방이 묘연했다. 친구집에서 놀고 있으려니 했지만 너무 오래 돌아오질 않았다. 해 질녘에나 돌아온 딸아이는 저수지에서 낚시하는 걸 구경했다고 했다.
이 겨울에 낚시를 한다고? 믿어지지가 않았다. 저수지가 다 얼지 않았어? 얼음을 뚫고 낚시를 한다고 했다.
그때까지 나는 그런 낚시가 있는 줄도 몰랐다. 정작 기가 찬 건 , 낚시 구경하느라 종일 얼음 위에서 머문 딸아이였다.
춥지 않았어? 점심도 안 먹고? 놀라서 묻는 말에 딸애는, 같이 간 큰 애가 컵라면을 사줬다고 했다. 컵라면까지 얻어먹어가며 아직 초 1인 아이가 구경할게 뭐가 있을까 의아스러웠지만 얼마나 추웠을까. 얼음 위에 종일 서 있느라 발은 얼마나 시렸을까 싶은 생각에 너무 애처롭기만 했다.
한 번 갔으니 말겠지 했지만 딸은 다음 날 또 저수지엘 갔다. 가지 말라고 말려도 듣질 않았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옷을 더 두껍게 입히고 양말을 한 켤레 더 신기고 컵라면 사 먹을 돈을 챙겨주는 것 밖에 없었다.
며칠 꾸준히 저수지로 향하는 딸이 궁금해 마침내 따라 가 보기로 했다. 딸 더러는 자전거를 타고 가자고 했다.
저수지 입구에 자전거를 두고 언덕을 걸어서 올라갔다. 자전거 누가 갖고 가면 어떡해. 딸이 염려를 했지만, 누가 갖고 갈라고. 더군다나 낡은 건데.... 그게 내 상식이었다.
언덕 위 저수지엔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얼음 위에 작은 구멍을 뚫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지켜보고 있었다. 도대체 저 구멍으로 뭘 잡는단 말인가. 빙어라고 했다. 얼음 밑에 있는 빙어를 잡겠다고 저리 창승을 떨고 있는 거라 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추운 날에 저 쪼끔 한 물고기를 잡겠다고 저러고 있단 말인가. 이 엄동설한에 하루 온종일?
저수지 가장자리엔 라면, 어묵, 커피 노점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이리저리 다니며 잡는 것, 잡아놓은 것 구경을 했다. 작고 날씬하고 투명한 빙어들이 팔딱거리는 것을 보는 것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제 그만 가자. 딸아이 손을 잡고 언덕을 내려오자 자전거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누가 훔쳐 간 것이었다. 너무 미안 헸다. 힘들더라도 끌고 올라갈걸. 첨부터 타고 오지 말 걸. 어쩌면 좋으냐고 발을 굴려도 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너무 미안해할까 봐 암말 안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괜찮다는 말도 결코 하지 않았다.
빙어낚시 구경은 그 한 해로 끝이 났다. 이듬해 우린 강릉을 떠났으니까.
지금도 궁금하다. 어린애가 종일, 몇 날 며칠을 얼음 위에서 구경할 만큼 재미가 있었는지.
지금도 마음이 짠하다. 종일 얼음 위에서 얼마나 추웠을지. 발이 얼마나 시렸을지. 안 추웠다는 그 말이 믿기질 않아서...
이 글을 다 쓰면 딸애에게 전화해 봐야겠다. 그때 너 어떤 마음으로 매일 저수지에 출근했는지. 팔딱이던 은빛 빙어가 그렇게 매력적이었는지 다시 한번 물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