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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은 다 위험한 거야

by 세실

으악! 얘가 왜 이래!!


박스 속에 집어넣으려는 남편의 손을 결사적으로 뿌리치며 점순이는 기어이 박스를 뚫고 탈출을 시도했다. 얼마나 절박하게 몸부림을 쳐대는지 그 바람에 박스는 찌그러지고 새 박스를 가지러 가는 사이 나더러 찢어진 박스 속의 점순이를 붙잡고 있으라 했지만 혼신의 힘으로 박스를 벗어나려는 작은 동물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목덜미를 붙들고 두 팔로 꽉 껴안아도 벗어나려는 발버둥을 감당하기가 너무 힘에 부쳤다. 금세 차 시트며 옷은 고양이털로 범벅이 되고 아무리 다정히 이름을 부르며 머리를 쓰다듬어 줘도 무슨 위기의식이 감지가 됐는지 흔들리는 눈빛으로 탈출의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마침내 더 튼튼한 새 박스에 강제로 집어넣고 잽싸게 박스테이프로 밀봉까지 한 다음에야 탈출의 우려에서 자유로워졌다.


휴~~왜 이러지? 착한 애가... 이동장이라도 마련했어야 하나.

점순이는 박스 속에 갇혀서도 있는 힘껏 야옹야옹 울며 박스를 이리저리 긁고 몸을 부딪혀댔다.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끊임없이...


오늘은 동물병원에 고양이 중성화수술이 예약되어 있는 날이다. 아침 10시까지 데리고 오되 아침밥은 먹이지 말고 굶겨서 오라고 했다.

외출고양이긴 하지만 늘 사람 곁에서 예쁨과 스킨십을 받으며 여느 집고양이 못지않게 애교를 떨며 특히나 남편을 졸졸 따라다니며 여전히 애기 때처럼 품에 안겨 있기를 좋아하는 아이 아닌가. 근데 오늘따라 오라 해도 쉬 와서 잡히지도 않고 박스에 넣는데도 저리 격렬하게 저항을 하다니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뭔가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본능적으로 느끼는 걸까.

하긴 예전에 키우던 고양이들도 이동장에 넣을라치면 꽤 애를 먹긴 했었다. 이동장에 들어가면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는 등 안 좋은 경험 때문에 싫어했지만 저 정도의 격렬함은 아니었기에 심히 당황스러웠다.


병원에 가서 철창으로 옮기는 과정도 수월치는 않았다. 철창에 박스채 집어넣고 테이프를 떼자마자 튕기듯 튀어나온 애가 탈출을 못하게 입구를 막은 건 간발의 차이였다. 다행히 의사가 고양이보다 조금 빨랐다.

겨우 한숨 돌리고 의사의 주의사항을 들었다. 수술 시 마취의 부작용으로 사망할 수도 있고. 어쩌고 저쩌고...

그 순간 내 머릿속은, 이럴 바엔 차라리 수술시키지 말걸 그랬나. 남편 말대로 새끼 낳으면 낳는 대로 키울 만큼만 키우고 너무 많으면 동물병원에 분양하라고 맡길 걸 그랬나. 만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엄마, 안돼! 그러다 바람나서 집 나가면 어떡해. 꼭 수술시켜요.


부모가 못 믿어워 수술비까지 보낸 딸 때문에 안 시킬 수도 없고...

그래, 사람이나 동물이나 수술은 다 위험한 거지. 의사를 믿고 그냥 맡기는 거야.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고 수술이 다 끝나면 연락한다고 집에 가 있으란다. 한 이틀 걸린다고.

예전에도 그랬던가? 바로 데려 왔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제야 병원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케이지엔 흰색의 날씬하고 큰 개가, 좀 작은 덴 좀 작은 역시 흰색 강쥐가. 그리고 우리 점순이와 똑같은 털색을 가진 고양이도 있고... 모두 너무 얌전하다 어떤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유독 우리 점순이만 아직 분위기 파악이 안 되는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안절부절이다.

설마 데려갈 때 저 똑같은 털옷의 고양이랑 헷갈리는 건 아니겠지. 우리 점순인 코에 까만 점이 있어 점순이잖아.


불안한 마음을 누르며 병원 문을 나섰다. 갑자기 낯선 환경에 동떨어져 얼마나 두려울까. 수술을 받을 땐, 받고나서도 얼마나 아플까. 이렇게 강제로 끌려 와 얼마나 놀랐을까. 착잡한 마음에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질 않았다.

부디 수술이 잘 되기를...

다시 그 난리를 치더라도 박스에 무사히 잘 실어 집에 돌아올 수 있기를...


오늘따라 날씨가 유난히 찼다. 병원 앞 도로는 눈을 미처 치우지 않아 몹시 미끄러웠다. 심란한 내 마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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