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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새동안

by 세실

해가 났다.
흐리던 하늘이 개이고 햇살이 비치는 걸 경상도에서는 해가 났다. 고 말한다. 꼭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경상도식 표현인 것 같다.
해가 난 지는 6일 만이다. 설날 이틀 전부터 줄기차게 내리치던 눈보라가 그치고 어제 오후부터 해가 나고 눈부신 햇살이 하얗게 쌓인 눈 위로 마구 쏟아졌다.
지붕을 덮은 눈들이 서둘러 녹아내리느라 오후 내내 낙수 소리가 정겨웠다.
남편은 눈이 그칠 기미가 보이자 눈 부는 기계로 부지런히 눈을 날려 길을 트면서 눈 속에 고립된 듯 하얀색에 파묻힌 산속은 서서히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눈 오던 첫날 딸애가 만들어 놓고 간 눈사람이 6일 동안 눈바람 속에서 꿋꿋이 마당을 지키다 마침내 눈밭에 쿵하고 쓰러졌다. 해님의 한 판 승리인가.

올해는 눈이 적게 온다 했다. 눈이 거의 없는 겨울이라 너무 좋다고 작년엔 눈 때문에 지겨웠었다고 노래를 했더니 그럴 리가 있느냐는 듯, 두고 보라는 듯 6일 동안 그동안 못 내린 눈을 다 쏟아붓는 것 같았다. 안전안내 문자가 하루도 빠짐없이 날아온 나날이었다.

그럼에도 아무런 피해가 없어서 다행스럽다. 오히려 바람이 세차게 불어 나무에 쌓인 눈을 다 날려준 게, 무거운 눈에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아름드리 소나무들의 허리가 뚝뚝 꺾이고 전신주가 넘어가는 피해를 막아 준 모양이다.

비람 때문에 테라스 지붕이 날아가는 일도 올해는 일어나지 않았고 요란한 며칠간의 눈보라에 아무런 생채기가 나지 않아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

이런 명절맞이 요란함이 없었다면 이 겨울이 너무 맹맹했으려나.


벌써 2월이다. 이제 좀 있으면 마당에 쓰러진 눈사람도 흔적 없이 사라지겠지.

눈 없는 봄길이길 바라본다. 그저 해가 나는. 비만 오는 나날이길 기대한다. 아무 탈없이 순조롭게 봄에 다다르길 희망한다.

눈은 엿새동안 내린 걸로 마지막이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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