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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들지 않기를...

by 세실

뜻밖에 새 식구가 생겼다. 빠꾸라는 이름을 가진 믹스견이다. 얼핏 진돗개를 닮은 그 녀석은 무슨 사연으로 우리 집까지 흘러 온 것인지는 자세히 설명 듣진 못했다.


"형님이 전화하셨는데 개 한 마리 20 일만 맡아 달래. 형님 지인 갠가 본데... 어떡할까. 내 맘대로 못하고 집사람한테 물어본다 했거든"


내 허락? 어처구니가 없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을. 설마 내가 아주버님 부탁을 거절하겠는가. 그런 베짱이 없는 사람이란 걸 너무 잘 아는 남편의 얄팍한 술수가 눈에 보이는 듯 뻔했다. 내 허락 없이 덜컥 승낙했다가 몰아닥칠 후폭풍을 사전 차단하려는 계책인게지.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한 마디뿐이었으니


'딱 20일이여. 만약 20일 지나도 안 데려가면 바로 형님댁에 델따준다 하소!'

"알았어. 알았다고"


남편은 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득달같이 달려 가 흰색의 개를 데려왔다. 집도 사료도 없이 달랑 홀몸인 시고르자브종 한 마리를.

안 쓰는 개집을 옮겨오고 물그릇 밥그릇을 챙겨주고...

갑작스러운 낯선 강쥐의 등장이 당황스러울 수도 있는데 우리 집 강쥐 치즈는 경계심도 없이 다가가 냄새를 맡고 친근감을 보였다. 순해 터진 우리 치즈. 쓸데없이 흥분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놀란 건 오히려 고양이였다. 마당에서 치즈랑 장난을 치며 뒹굴던 점순이는 새로운 강쥐의 등장에 혼비백산하여 작업실 안으로 도망쳐 창문 너머로만 새 식구를 관찰하기 바빴다. 아무리 치즈랑 친해도 낯선 강쥐는 여전히 두려운 존재인가 보다.


딱 20일이여.

다시 한번 다짐을 하자, 20일에서 한 달. 하며 슬쩍 열흘을 늘였다.


"그것 봐. 벌써 약속이 틀리잖아. 그러다 한 달쯤 되면 정이 들어 우리가 키우겠다고 하길 바라는 거 아냐? 하지만 절대 그런 일은 없을 테니 꿈도 꾸지 마소!"


남편은 은근히 개 한 마리를 더 키우길 원해 왔지만 나의 강력한 반대로 한 마리에 만족하고 있는 상태다. 조용하고 온순한 강쥐도 두 마리가 함께 하는 순간 그 번잡함은 감당이 안 되는 걸 잘 알기에 타협할 수가 없는 사안이다.


빠꾸는 제법 예쁘게 생겼다. 몸집은 치즈보다 작지만 수컷이고 순해서 새로운 환경에서도 거의 짖지 않고 낯가림도 없다.

묶어놓지 않아 마냥 자유로운 치즈를 보면 혼자 묶여 있는 게 안쓰럽긴 하지만 익숙해질 때까진 묶어두는 수밖에.


오늘은 잠시 산책을 시켜주었다. 엄청 좋아하며 마구 줄을 당겨 온 마당과 텅 빈 텃밭을 돌아다녔다. 다시 묶는 게 미안하게.

며칠 지나면 풀어놔야지. 설마 달아나진 않겠지. 달아나도 할 수 없지 뭐.


정 붙이지 말아야지. 한 달 후 떠날 때 아무 서운함 없이 보낼 수 있게 얼굴도 되도록 마주치지 말아야지.

남편이 문제다. 워낙 동물을 좋아하는 데다 아침저녁 자진해서 밥을 챙겨주니 정이 들 수밖에 없을 텐데.


'그냥 한 달 동안 별 탈없이 잘 지내다 무사히 돌아갔으면 좋겠다. 그때까지 조금은 자유롭고 행복했으면 참 좋겠다.

그동안 부디 정들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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