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서 돼지감자 좀 주워"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소리쳤다.
앵? 정말 돼지감자를 찾은 건가. 돼지감자가 진짜 있긴 있는 건가? 벌떡 일어나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면장갑도 찾아 끼고 모자도 쓰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돼지감자가 있다는 곳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아무것도 심지도 가꾸지도 않고 방치해 둔 땅에 돼지감자가 엄청 많다는 소린 윗집 여자한테서 들었다. 그것도 우연히.
그 땅에 있는 엄나무 순인 개두릅을 몽땅 다 따 가버렸을 땐 사실 좀 부아가 났었다. 하루나 이틀 뒤에 따야지 벼르고 있던 차에 그 여자가 앞질러 모조리 따 가버렸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따려고 벼르고 있었더니... 누구라도 먹었으면 됐네요. 하고 웃어넘겼지만 어처구니가 없긴 했었다. 그 말 끝에, 거기 돼지감자도 엄청 많던데요. 가을에 캐서 당뇨병 있는 지인에게 부쳐주곤 했는데... 하는 게 아닌가. 우리 땅에 돼지감자가 자라고 있다는 것도, 돼지감자가 도대체 어떻게 생긴 건지도 모르는 바보 멍텅구리 같은 땅주인이니 남이 다 캐 간들 원망할 처지는 아닐 것이다. 우리 땅인 걸 몰랐다고 하면 더더욱 할 말이 없기도 하고.
그땐 돼지감자란 이름만 알았지 어떤 건지도 몰랐으니 아깝단 생각조차 들질 않았다. 그래도 가끔은 궁금했다. 돼지감자가 어떤 건지. 이 땅 어디쯤에 파묻혀 있는지.
그렇게 가을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자 남편이 갑자기 그 땅에 콩을 좀 심어보자 했다. 콩이 제일 손이 안 가고 키우기 쉽다고 들었나 보다.
콩을 심고자 포클레인으로 땅을 파헤치자 돼지감자가 줄줄이 땅 밖으로 얼굴을 내민 모양이었다.
무심결에 돼지감자가 있다는 걸 땅주인에게 알려줘 버렸으니 더 이상은 캐 가질 못하고 고스란히 땅 속에 묻혀있던 것들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어 흙 위에 흩어져 있었다.
크기는 감자만 한데 울퉁불퉁 아주 못 생겼다. 그래서 이름이 돼지감잔가 보다. 어찌 보면 툭툭 튀어나온 게 생강 비스므레한 게 감자와 생강의 중간쯤 되는 외모를 가졌다.
일일이 땅을 파서 캐는 것도 아니고 땅 위에 올라앉은 것을 그냥 주워 담은 것인데도 힘이 들었다. 마른 잡초줄기와 크고 작은 돌멩이들, 고르지 못한 땅 사이를 돌아다니며 감자를 주워 나르는 것도 쉬운 노릇은 아니었다.
처음엔 작은 것까지 다 주워 담았지만 결국엔 큰 것들만 골라 담아야 할 만큼 양이 엄청났다.
4월의 햇살은 벌써 뜨겁게 등을 내리쏘고 이마에선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얼마 안 가, 아이고 더는 못하겠네. 이것만으로 충분 해. 두 손을 들었다.
집에 와서, 과연 돼지감자란 어떤 것이며 어떻게 먹는 건지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천연 인슐린으로 불릴 만큼 혈당조절에 좋고 변비, 콜레스테롤 저하. 면역력 증진. 뼈 건강에 도움. 다이어트 식품... 흐미, 효력이 거의 만병통치 수준이다.
생으로도 먹고 말려서 차를 끓여 마시거나 튀김, 생채, 깍두기를 담가 먹어도 될 만큼 활용법도 다양했다. 여태 몇 년 동안 보물을 곁에 두고도 몰랐네.
쇼핑몰에서도 활발하게 판매를 하고 있었다. 생으로도 팔고 말린 것, 볶은 것, 가루 등등.
우선 깨끗이 씻어 한 조각 썰어 먹어보았다.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이 좋았다. 마치 단단한 무를 씹는 것 같았다. 딱히 특별한 맛은 없었고 살짝 달착지근한 듯도 했다. 식감은 좋지만 특별한 맛은 없으니 과일처럼 많이 먹게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물이 푹 담갔다가 흙을 일일이 씻어내고 잘게 썰어 믹서기에 갈아 남편에게 한 잔 내밀었다.
괜찮네. 꿀을 넣으면 효능이 더 좋대. 남편도 어느새 검색을 해봤나 보다. 까이꺼, 꿀 넣어 주지 뭐.
돼지감자는 씻는 게 제일 난제다. 골골이 박힌 흙은 철수세미로 1차 문지르고 칫솔로 다시 문지르고... 팔이 아프게 씻은 후 납작하게 썰어 일부는 건조기에 말리고 일부는 햇볕에 내놓았다. 저 많은 걸 생으로 다 먹기는 불가능하고 말려서 먹는 수밖에 없겠지. 누구는 말린 걸 수시로 집어먹어 더 이상 과자 사 먹을 일 없다고 했으니 군것질 좋아하는 남편에게 딱이네.
한나절 내내 손이 붓도록 손질을 해도 표도 안 날만큼 많이 남았다. 나한테 돼지감자밭을 알려준 바람에 더 이상 못 캐게 돼서 서운 할 윗집에 좀 나눠 줘야 하나.
여태까지 말없이 혼자 다 캐 먹은 게 괘씸해서 시치미 뚝 때야 하나...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