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개나리를 심었다. 재작년에 심은 개나리가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다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개나리만큼 번식 잘하고 못 키우기 힘든 식물도 없다는데 그 어려운 걸 우리가 해낸 것이다.
가지만 꽂아 놓으면 저절로 자란다 했지만 그런 개나리마저도 돌봄의 손길이 없으면 결코 살아서 샛노란 꽃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교훈만 남긴 채 그렇게 몽땅 우리 곁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그 돌봄의 손길이란 오로지 물 주기란 것을 올해 들어서야 귀동냥으로 알았다.
매일매일 열심히 1년은 물을 줘야 한다고 했다.
재작년엔 전문가인 지인을 대동하고 개나리를 한 자루 꺾어 와 땅에 잘 안착하라고 약품 처리까지 하고 심었었다. 그 전문가가 알려준 건 딱 거기까지.
나뭇가지의 맨 끝 순만 남기고 깊이 심을 것. 그리고 물을 흠뻑 자주 줄 것. 그런 건 알려주질 않아서 결국 다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사라져 갔다.
하나부터 열까지 소상히 알려줘야만 하는 얼간이들이란 걸 그분은 미처 몰랐던 게지.
올해 다시 개나리 심기에 도전해 볼 용기를 낸 건, 3년 전 개나리 심기에 성공해 지금은 개나리꽃에 둘러싸여 황홀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지인이 너무 부러워서였다. 그 지인이 알려 준 비법이 바로 물 많이 주기였다.
다시 한번 도전해 봐? 나도 물 많이 주지 뭐.
그렇게 다시 개나리 가지를 꺾어 와 한 뼘정도로 자르고 온 집 둘레 비탈진 곳곳에 이틀에 걸쳐 가지를 꽂았다. 남편이 쇠꼬챙이로 땅에 깊이 구멍을 내면 나는 가지를 꽂고 흙을 덮고 꼭꼭 눌러주었다.
개나리는 밑으로 축축 늘어지는 식물이라 굳이 언덕배기마다 찾아다니며 심었다. 가파른 비탈을 따라 노랗게 물들 개나리 언덕을 다시 한번 꿈꾸며...
그때부터 나의 고생길이 시작되었다.
매일 해 질 녘이 되면 개나리 물 주기에 나서야 했기 때문이다. 언덕배기 잡나무들을 헤치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며 물통을 들고 올라가 물을 주다 지쳐 사다리를 걸쳐 거리를 단축하기도 하고 길게 길게 호수를 수도마다 연결하기도 했다. 그래도 미처 호수가 닿지 않는 곳은 여전히 물통을 동원해야만 했다.
넓기도 하고 가파르기조차 한 땅을 이쪽저쪽 옮겨 다니며 물을 주다 보니 운동이 여간 되는 게 아니다. 한 차례 물을 다 주고 나면 지쳐서 기진맥진한 상태가 된다.
그래, 며칠 동안 매일 물을 줬으니 이제 이틀에 한 번씩만 줘도 되겠지. 벌써부터 꾀가 나기 시작한다. 1년 동안 매일 물을 줬다는 지인의 말은 사실일까. 그 집은 그래도 범위가 좁고 평지에 심었겠지 싶다.
비는 언제쯤 올까. 매일 날씨 앱을 들여다본다.
그래도 나의 애씀 덕분인지 개나리 가지에 파란 잎사귀가 뾰족이 올라오는 게 보인다.
화초 가꾸기에 도무지 관심 없던 내가 이렇게 매일 물을 주다 보니 없던 애정이 마구 샘솟는 걸 느낀다. 내가 정성을 쏟는 만큼 개나리도 보답을 하리라 믿어본다.
모레는 비 소식이 있다. 그것도 이틀 동안이나.
휴~ 다행이다. 오늘 저녁 한 번만 주면 며칠 동안 푹 쉴 수 있겠네.
개나리 물 주기와 함께 나의 봄이 다 지나갈 모양이다.
개나리가 제공한 언덕배기 오르내리는 빡센 운동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