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기 산속은 아카시아꽃이 한창이다. 나무마다 하얀 꽃이 주렁주렁 탐스럽고 싱그런 향기가 산 골짝골짝 흘러넘친다.
아카시아꽃을 보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을 거다.
어린 딸이 혼자 학교 가는 게 안쓰러우셨는지 엄마는 이웃에 사는 5학년 짜리 남자애에게 나와 함께 등교해 줄 것을 부탁하셨다. 가까운데 초등학교가 있었지만 굳이 시험까지 치면서 교대부속국민학교에 다니느라 거리가 제법 되었다.
너무 싫었다. 그 남자애랑 같이 학교에 가야 한다는 게 정말이지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나 혼자서도 충분히 잘 갈 수 있는데 왜 저 남자애랑 동행을 해야 한단 말인가.
같이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이미 그 애가 와서 기다리고 있으니 난감해진 엄마는 나를 달래고 달랬고 그 바람에 억지로 가기는 갔는데 같이는 아니고 나는 혼자 앞장서서 걸어가고 그 애는 뒤따라 오는, 마치 보디가드와 함께인 듯한 그런 동행이었다. 나는 화가 잔뜩 나서 최대한 빨리 걸어갔다.
어릴 때의 나는 꽤나 까칠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나 보다. 아니, 타고난 모양이다. 지금도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게 여전히 어려운 걸 보면.
그렇게 쌀쌀맞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애는 매일 나를 데리러 왔고 그 애 때문에 나의 등굣길은 언제나 불편하고 짜증스럽기만 했다.
우리 학교는 교문을 중심으로 왼쪽은 초등학교 오른쪽은 대학의 영역으로 나눠져 있었다. 대학 쪽엔 아카시아나무가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있었다. 오래되고 쭉쭉 뻗은 아카시아나무에 꽃이 만발하여 향기가 코를 찔렀다.
남자애들은 그런 아카시아 나무에 올라 가 꽃을 따서 아래로 마구 던졌고 여자애들은 밑에서 그 꽃들은 주워 담았다.
나도 몇 송이 주웠다. 아카시아꽃은 먹는다고 했지만 꽃을 먹어 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때 어디선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쳐다보니 그 애가 나무 위에서 내 이름을 부르면서 나를 향해 꽃을 던지는 게 아닌가. 너무 기분이 나빴다. 기분이 나쁜 나머지 손에 들었던 꽃마저 다 팽개치고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그 후로 그 애는 더 이상 나를 데리러 오지 않았고 마침내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등교를 할 수가 있었다.
반백 년도 더 된 기억이 왜 아카시아꽃만 보면 아련히 떠오르는 것일까. 물론 그 애 얼굴도 생각이 안 나지만 문득 미안해진다.
도대체 나는 뭐가 그렇게 싫고 화가 났을까. 모처럼 기사도를 발휘하려 했던 그 소년은 새침데기 꼬마 때문에 얼마나 무안했을까.
아카시아꽃의 기억을 되씹으며 올해는 꼭 한 번 아카시아 꽃요리에 도전해 봐야지. 부침도 해보고 튀김도 해 봐야지. 미안했던 마음도 함께 버무려서.
어떤 맛일지 기대된다.
* 아카시아가 아닌 아까시나무가 맞는 말이라고 한다. 아카시아는 아열대 식물로 노란 꽃이 피며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한다.
진짜 아카시아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