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의 계절

by 세실

5월은 체리의 계절.

온 시장이 체리로 뒤덮이다. 한국 아니고 중국 얘깁니다. 예전에 중국 산동성에 있는 연태에 몇 년 간 살았던 적이 있어요. 한국과 지리적으로 무척 가까워 기후가 거의 흡사하답니다.

바닷가 휴양도시인 연태의 특산품으론 와인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큰 규모의 근사한 와인박물관도 있고요. 하지만 연태는 원래 사과의 고장입니다.

대구가 고향이라 소싯적부터 사과 좀 먹어 본 제 입에도 연태 사과는 아삭하니 맛이 일품이더군요. 가격도 너무나 쌌고 한국으로 수출도 많이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연태에 5월이 오자 온 시장은 사과가 아닌 체리로 뒤덮이기 시작하더군요. 그 엄청나게 크고 긴긴 시장이 온통 체리로 가득 차는 경이로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가게며 리어카에 체리가 넘쳐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시골 아낙네들은 커다란 광주리에 체리를 그득그득 담아 길가에 줄줄이 진을 치고 있었지요.

그때만 해도 한국에선 백화점 마트에서나 예쁜 상자에 소소하게 몇 개 담은 체리를 비싼 가격에 팔던 때라 사 먹을 엄두도 못 냈었거던요.

그런 체리가 이렇게 온 시장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있다니 그저 놀랍고 황홀할 지경이었습니다. 온통 체리 체리 체리... 마치 체리 축제가 벌어진 것 같았어요.

빨강, 노랑, 검붉은 예쁜 체리들.

가격요? 한 근 500g에 보통 5~7 위안. 한화로 900원~1700원 정도. 최상급도 3000원을 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가격으로요.

저는 중국에서 실컷, 후회 없이 먹어야 하는 품목 1번으로 체리를 꼽았습니다.

한국 다니러 갈 때 저 체리를 좀 갖고 가고 싶다. 그런 생각 저만 하는 게 아니었나 봅니다. 짐 속에 체리를 넣어 가다가 공항에서 압수당했다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왔으니 말입니다.


연태에는 한국 학생들이 다니는 한국국제학교가 있습니다. 그 학교는 시내에서 좀 떨어진 한적한 교외에 위치해 있어요. 버스 다니는 큰길에서 학교까지도 꽤 거리가 멀었는데 그 사이가 모두 체리 과수원이더군요. 나무마다 빼곡히 체리가 조롱조롱 열려 장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상상해 보셔요. 빨갛고 노란 체리가 잔뜩 열린 나무들로 가득 찬 체리 과수원을요. 말로는 표현이 안 될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었죠.

일주일에 한 번 방과 후 수업을 하러 갈 때면 저는 욕망에 사로잡혔어요. 차에서 뛰어내려 저 체리를 마음껏 따고 싶다.

과수원은 끝없이 펼쳐져 있고 체리는 나무마다 휘어지게 달려있고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으니...


어제 과일 트럭에서 체리를 사라고 외치고 있더군요. 이젠 체리가 아주 흔한 모양입니다. 물론 국내산도 있겠지만 중국산도 많지 않을까 싶네요. 그렇게 체리가 넘쳐나는 곳이 닿을 듯 가까이에 있으니까요.

연태는 사과의 고장이지만 체리의 고장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5월이면 그곳의 체리가 그립습니다. 아니면 그곳에 있었던 그때의 내가 그리운 걸까요.

다시 연태에 갈 수 있다면 꼭 한 번만 더 예쁘고도 맛있는, 황홀한 체리의 물결에 휩싸여 보고 싶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카시아 꽃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