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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민 Oct 30. 2023

무서웠던 고양이 산


매일 도시락을 두 개나 싸와서 점심때 하나, 저녁에 하나를 먹고 매일 하는 야자(야간자율학습)를 했다.

매일 야자는 밤 9시까지 하는데 우리 집은 막차가 9시라서 학교에서 8시 40분에 나가야 했다.

그것도 빠른 걸음으로 학교에서 무거운 가방을 메고 15분은 걸어야 버스 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다.


학교 앞에서도 버스가 있긴 한데 그 버스 기다려서 터미널로 가는 것보다는 그냥 지름길로 걸어가는 게 더 빠르고 버스를 놓칠 일도 없었다.

어쩌면 여중을 3년 다니다가 여고를 오다 보니 이제는 기계처럼 걷는 것도 빨라졌다고 해야 맞지 싶다.

버스를 타고 다니고 버스에서 내려서 아침에 또 10분 넘게 걸어 다녔는데도 그 당시는 힘든 줄도 몰랐고 

걸으면서 영어단어장도 보면서 외웠고 버스를 타거나 걸을 때는 늘 손에 외울 거리가 있었다.


학원에 다닐 형편도 안 됐던 것 같고, 주위에 부유하게 사는 친구들만 학원을 다니는 듯했고, 정석이나 해법을 사서 공부하고 그것도 감지덕지였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버스를 타기 위해서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학교에서 출발했다.


밤에 걸으면서 다리를 건너고 강바람이 시원하고, 비가 개인 뒤의 느낌이라서 더 기분이 좋았고 

물 맑은 강의의 다리, 지금은 모두 멋진 교각으로 변했지만 그때만 해도 비가 오면 그 다리를 건너지도 못하고 한참을 바라보고 비가 그치고 물이 빠질 때까지 기다리던 때도 있었다.


밤에 강을 건너다보면 강에서 피라미들이 세상구경을 하는지? 뛰어올랐다가 내렸다가 하는 것이 반짝반짝 빛났고 어떻게 보면 하늘에서 빛나는 별 같았다.

그만큼 물도 맑았고 세상도 맑았나 싶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다리를 건너는 기분도 좋고, 하루종일 학교에서 보내는 나를 힐링시켜 주는 유일한 시간이었지 싶다. 밤에는 단어장을 보기보다는 어둡기도 했고 그런 강과 들을 보면서 걷는 일이 많았다.


진급하고 새 학년이 되면서 야자 마무리 못하고 다른 애들보다 20분 빨리 나간다고 말씀을 미리 드려서 선생님께서는 아시지만 그래도 갈 때는 언제나 인사를 드리고 갔다.


야자 시간에는 담임선생님께서 교실 책상에 많이 앉아 계셨고 그렇지 않을 때는 그냥 갔다.

그런데 하루, 딱 한 번 버스를 놓쳤다.


평소와 똑같이 나왔고 버스를 탈 수 있는 시간인데 터미널에 도착하니 버스가 뒷모습을 보이면서 지나갔다.

그걸 보는 순간 힘이 빠지고 다리가 떨렸다.


'집에 어떻게 가야 하나?'


'운전기사 아저씨 너무 나쁘다. 오늘 왜 이리 빨리 출발하지?'


'시계를 보신 거야? 안 보신 거야?'


'평소 같으면 아직 출발시간이 아닌데...., '

'막차는 혹시나 손님들이 오지 않나? 좀 더 생각하면서 출발해야 하는 거 아닌가?'

뭐 이런 원망이 차오르고 순간 걱정이 되면서 그때만 해도 자가용이 있던 시절도 아니었고 버스만이 우리 동네의 유일한 발이었다.


고양이 산은 아니고 그냥 다른 산의 사진을 올렸습니다.

우리 동네까지 들어가는 버스는 내가 놓친 게 막차였고, 우리 동네보다 밑에 있는 국민학교가 있는 동네까지 가는 버스는 9시 30분이 막차였다.

그 버스를 타고 국민학교 옆에서 내리면 우리 집까지는 4km다.

사람들이 말을 하는 십 리 길이다.


국민학교 때는 걸어서 거의 1시간을 갔지만 고등학생이다 보니 아무래도 더 빨리 갈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국민학교 때는 차비 10원을 아껴서 아이스 깨끼 사 먹느라 낮에 그 길을 즐기면서 걸었고 지금은 고등학생이다 보니 밤에 걸어가야 한다.


친구도 없이 오롯이 혼자서...,


시골이다 보니 밤에 걸어가도 차 한 대 지나가는 거 구경하기 힘든 때였고, 길 옆 양쪽 논에서는 개구리 소리가 자기 세상인 듯 요란하게 쉬지 않고 울어댔고 그때는 사람보다도 동물이나 귀신이 나올까 봐 무서워하던 때였다.


그래도 엄마는 늘 사람보다 무서운 건 없다고 머리 꺼먼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 말씀을 하셨다.

그때는 그 말을 이해를 하지 못했다. 


전설의 고향을 TV에서 시청하던 때였고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뭐 이런 무서운 얘기로 친구들하고 웃기도 하고 놀라던 때였고 국민학교 들어가고 1학년 때 전기가 들어왔고 앞집 친척집에서 제일 먼저 tv를 사서 여름에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마루에 있는 tv를 함께 보는 일도 있었다.

그때는 아마도 국민학교 저학년 때였고, 우리 집도 그나마 동네에서는 tv를 빨리 산 편이었다.


찐 감자와 옥수수를 놓고 함께 나눠먹고 수제비도 끓여서 같이 먹던 그런 때였다.

앞집에는 자식이 없어서 우리를 엄청 이뻐하셨고, 나를 특히 이뻐하셨다.


하얀 소복 입은 귀신 얘기를 많이 들었고, 어떤 산소 앞에 귀신이 나온다는 말도 들었고 그래도 그나마 나는 담이 큰 편이어서 한 동네에 있는 큰 집에서 놀다가 전설의 고향을 보고 좀 떨어진 거리에 있는 우리 집으로 혼자서 걸어온 일도 있었다.


'그냥 무서운 생각 안 하고 아무 생각 안 하고 어두운 길을 그냥 빨리 걸어오면 된다.'


'무서운 생각은 하지 말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무서운 생각을 떨치려 애썼는데

어쩌면 이게 나의 무서움을 달래는 혼자만의 방법이었고 다른 방법은 없었다.


큰엄마는 무섭다고 자고 가라고 해도 난 우리 집이 편했고, 아무리 큰 집이라도 언니들도 있고 복잡했다.


그런 성격인 나는 드디어 9시 3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탔다.

모두 국민학교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타는 버스였는데 별로 아는 사람들도 없었다.


난 주변을 둘러보고 이런저런 생각할 새도 없이 버스는 달리기 시작했고 일단 버스를 놓쳤다는 게 문제였고 그 버스 아저씨가 너무 싫었다.



우리 동네 막차인데 좀 정확한 시간에 출발하지 않고 왜 평소보다는 빨리 출발하셨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늦게 온 것도 아니고 맞춰서 온 것 같은데....,


좀 더 미리 나온다고 하면 선생님께서 싫어 하 실수도 있고, 최대한 학교에서 야자를 하고 시간을 맞춰서 와도 버스를 놓친 적이 없는데 무슨 이런 일이 있는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버스는 국민학교 옆에 도착할 시간이 다 돼갔고, 나는 버스에서 내려서 어떻게 갈지? 혼자서 고민했다.


친구들이 늘 말을 하던 무서운 산, 고양이산 앞을 지나가야 하는데, 당연 고양이 산은 신작로와는 좀 떨어져 있다.

아마도 산모양이 고양이를 닮아서 고양이산이라고 불리어지고 있었지 싶다.


국민학교에서 걸어가다 보면 우리 동네 밑에 동네가 하나 더 있는데 그 동네와 국민학교 사이에 고양이 산이 있었다.

길 옆에는 논이 있고 논 옆이 고양이 산인데, 어릴 때부터 친구들이 그 고양이 산에는 귀신도 많고 호랑이 소리도 들리고 무서운 짐승들도 많다고 했다.


이미 버스를 탈 때는 집에 전화를 해서 조금 늦게 간다고 말을 했고 그 당시는 엄마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셨고 아버지는 사무실에 출근을 하셨는데 먹고 사느라 그렇게 자식들에게 신경을 많이 쓰던 때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버스가 30분 차이라서 버스를 타고 온다면 그렇게 큰 시간차도 아닌데 내가 내려서 한참을 걸어야 하니 문제였다.


요즘과는 분위기도 너무 달랐고 당연히 그렇게 무서운 세상도 아니었고, 항상 부모님 걱정을 시켜드리지 않고 나름 혼자 잘 알아서 하는 딸이어서 어쩌면 엄마도 걱정도 하시지 않으셨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 산은 아니고 그냥 다른 산의 사진을 올렸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메고 빨리 걷기 시작했다.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고등학교에 다니던 때였고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신발은 운동화여서 어쩌면 더 편하게 빨리 걸을 수 있었던 것 같은데 가방도 무거웠고 

마음도 무거웠다.


머리는 온통 빨리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과 언제 집에 도착할 수 있는지?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빨리 옮기기 시작했고, 뛰다가 걷다가 했다.


날씨는 흐리고 비가 내리다 그친 후라서 비포장도로라 흙도 신발에 올라붙었고, 마음도 무겁다 보니 더 발은 진 흙 땅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고 걸음을 빨리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갓 길로 발을 옮기면서 최대한 걷고 뛰고, 비로 파인 땅을 피했고 책은 가방 가득이라서 어깨는 빠질 것 같았지만 그게 큰 문제는 되지 않았고 온 신경을 발에 가 있었다.


마음은 급하고 무섭고 고양이 산이 다가올수록 점점 손에 땀이 나고 머리는 땀에 젖어서 무거워지고 머리카락은 쭈뼛쭈뼛  서기 시작했다.


갑자기 고양이 산에서 무서운 짐승이 나올 것만 같고,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소복 입은 귀신이 머리를 풀고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걸음은 더 빨라졌고, 숨소리는 더 거칠어졌다.


그렇게 온 신경을 발걸음에 맡기고 앞만 보면서 허겁지겁 오다 보니 고양이 산 앞에 다다랐을 때는 숨소리도 죽이면서 걸었다.

혹시나 짐승들이나 귀신이 내 소리를 알고 나오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렇게 고양이 산은 지나왔고, 우리 동네 밑 동네 어귀에 다다랐다.


이 밤중에 17살, 여학생이 밤길을 혼자서 무거운 가방을 메고 지나가는 일도 흔한 일이 아니었다.

시간이 10시가 다 돼가다 보니 시골은 한밤중이었다.


동네에 다다르고 보니 백열등 불빛도 주택에서 보이고 약간은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참..., 사람에게는 불빛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정말 이 작은 사람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한, 바로 옆에 사람이 있다는 신호인듯한 불빛 너무 반가워서 마음도 가볍게 느껴졌고 

아직 2킬로를 더 걸어야 하는데도 집에 도착한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고 반은 왔다는 안도의 한숨도 쉬어졌다.


그래서 친구가 사는 동네, 우리 동네 밑동 네는 지나왔고, 조금은 가벼워진 걸음으로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도착점이 보인다는 것과 우리 집이 가까워지고 우리 동네의 가장 첫 집, 우리 집의 불빛이 보인다는 것은 굉장히 나에게는 힘이 되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목적이 있는데 목적지가 보이고 도착점이 있는데 도착점이 보인다는 것에서 얼마나 큰 희열을 느낄까?


아랫동네의 불빛을 보면서 다시 걸음을 재촉하다 보니 우리 동네, 특히 우리 집 불빛이 내게는 아주 작은 별빛처럼 느껴졌고 내 걸음수가 많아질수록 그 불빛은 점점 더 크고 가깝게 느껴졌다.


그래도 우리 동네에 도착하기 전 큰길 옆 시퍼런 대밭을 지나야 해서 완전 무서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우리 집이 보인다는 것에 큰 힘을 얻고 이제는 가방의 무게도 느끼지 않고 오로지 집만 보면서 막 뛰었다.


그러다 보니 대밭도 지나고 약간은 미세하게 들리는 듯한 산짐승의 울음소리도 멀어지고 

태연한 척 우리 집 철대문을 밀치고 달리기 선수처럼 발을 마당에 먼저 밀어 넣었다.


땀에 젖고 신발은 흙투성이가 되고 그렇게 뛰어오다 보니 정신이 없었고 4킬로를 단숨에 온 것 같았다.

달리기라고는 소질도 없는데 걸음을 생각보다 빨리 걸었고 엄마에게 말씀드렸더니 깜짝 놀라셨다.


혼자가 아닌 친구와 같이 오는 줄 아셨단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항상 혼자 야자를 하고 걸어 다녔고 친구들은 모두 여상에 가서 야자를 하는 애들이 없었다.

그래서 언제나 혼자였고 고2가 되면서 1학년 동생이 생기면서 그 애랑 같이 다녔다.


엄마가 크게 걱정은 안 하신 듯했고 나는 좀 무섭긴 했지만 그래도 집에 잘 도착했으니 다행이었고

사실, 엄마는 아들이나 신경 쓰지 딸까지 신경 쓸 시간도 없었다.

어쩌면 그것을 바라면 사치였고, 엄마는 늘 바쁘셨고 일에 묻혀 사셨다.


여상을 가라는 엄마 말을 듣지 않고 여고를 선택한 미안함에 이런 일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옳지 않고 

모든 것은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날 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을 겪었고, 멀게만 느껴졌던 4킬로를 그것도 비가 그쳐서 질퍽한 길을 뛰면서 까만 밤에 단숨에 걸었다.


고양이 산은 아니고 그냥 다른 산의 사진을 올렸습니다.

*요즘도 가끔 이 일이 생각이 난다.

그때는 그런 일도 있었고, 내가 생각보다 강했나 싶기도 하고 우린 그렇게 자랐다.


별일도 아닌 것 같았는데 살면서 문득 생각날 때가 있다.

살다 보니 그렇게 특별한 일도 아니었는데 늘 생각이 나고 표 나지 않게 나의 삶의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고양이 산은 아니고 그냥 다른 산의 사진을 올렸습니다.


고양이 산은 아직도 그대로 있다.

하지만 고양이 산은 변하지 않았지만 길도 변했고 주변이 모두 공장이 들어서서 다른 모습이 됐다.

지금은 고양이 산이 그렇게 무섭게 느껴지지 않는다.

걸어갈 일도 없고 또 그쪽으로 갈 일도 없어졌다.



친정 부모님도 안 계시고 집은 그대로 있지만 예전 모습을 찾을 수는 없다.

친구들과 버스 타는 것 대신 차비로 아이스 깨끼를 사 먹고 삼삼오오 4킬로를 걸어갈 때 

고양이산 앞 쪽에 샘물이 있다고 거기서 물을 먹고 가는 친구들도 있었다.


오늘따라 그 샘물도 생각이 나고 고양이 산이 생각이 난다.

그 고양이 산은 이제 우리에게 무서움을 주는 존재는 아니고 곳곳에 공장이 들어오면서 공기도 안 좋은데 그 산이 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

나무도 많고 숲도 우거지고 세상이 변하고 나의 무서운 마음도 사라졌지만 고양이 산은 그대로다.


고양이 산은 아마도 숨 막히고 답답할 것 같다.

앞, 옆, 뒤로 공장이 들어서고 사람들은  복수를 하듯 고양이 산 밑까지 공장을 지었다.

그래도 말없이 고양이 산은 모든 것을 이겨내고 파랗게 푸르름을 자랑하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길을 지날 때면 남편께 어릴 때 무지 무서워했던 산이라고 말을 하곤 한다.

친구들이 무서워했고 밤이면 고양이 소리도 들리고 귀신이 나올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웠다고...,

50대 후반으로 접어든 어떤 아지매는 살면서 그 산이 생각이 나서 몇 자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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