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이익~~'밥솥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면 곧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방 까지 날아 들어온다.
맞다.오늘은 소풍가는 날이다. 분주하게 음식 짓는 소리가 내방까지 들리는 날은 1년에 몇번 안되는 알람이 필요없는 날이다. 나는 깨우지 않아도 벌떡 일어나 김밥싸는 엄마 옆에 딱 붙어 구워놓은 햄을 몰래 빼먹었다.
고슬고슬 하얀 쌀밥에 햄, 맛살, 당근, 보슬보슬한 계란,단무지 그리고 시금치 (엄마는 시금치가 들어가야 맛있는거라면서 꼭 넣으셨다.)까지 준비가 되면 김발위에 김을 올리고 그 위에 모락모락 김이 나는 고소한 하얀밥을 올린다. 하얀도화지 같은 밥 위에 빨강 노랑 초록의 물감을 촤라락 뿌려주고 돌돌 말아주면 마법 처럼 맛있는 '무지개 김밥'이 완성된다. 단정하게 잘 말려져 있는 김밥에 다시 한번 참기름를 바르고 칼로 썰면 봄의 꽃들이 동그랗게 굴러 나온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절로 군침이 꼴깍 넘어간다. 내 마음을 아는지 엄마는 김밥을 썰면서 꼭 내 입에 넣어주셨다.
"맛있나 먹어봐.. 체하겠어, 물 마시면서 천천히 먹어."
소풍날 아침은 도시락에 담고 남은 '꼬다리'. 그 꼬다리가 또 얼마나 별미 인지 모른다. 소풍가서 친구들의 도시락은 열면 각자 집의 특색있는 김밥들이 나온다. 어묵을 졸여서 넣은 김밥, 볶은김치를 넣은 김밥, 밥 안에 검은깨가 꼭꼭 박혀있는 김밥, 그리고 김밥말고 유부초밥을 싸온 친구도 있었다. 예전에는 유부초밥이라는게 흔치 않아서 초밥은 유독 색다르고 좋아보였다. 친구들과 김밥을 나눠먹으며 더욱 우정을 꽃피웠고 그때 먹었던 김밥은 잊을수 없는 맛이다.
어느덧 꽃다운 이십대가 되어 남자친구 준다며 생전 안해 본 요리하느라 주방을 엉망으로 만들어 엄마에게 등짝을 맞았던 때가 있었다 . 그때의 나는 김밥이 만들기 어려운 음식인 줄 몰랐던 거다.
만들면 터지고 마음처럼 예쁘게 안나오는거다.
"엄마..이게 왜 잘 안되는거야.. 나 시간 없는데.."
"가서 화장이나 하셔.."
내가 머리 매만지고 화장하는 사이 엄마는 또 마술을 부려놓으셨다.
"역시 우리엄마가 최고네!! 고마워, 오빠랑 잘먹을께!!"
"남자친구 생각만 말고 엄마나 좀 만들어줘봐"라며 나가는 내 뒤통수에 소리치셨었다.
결국 내 첫 도시락은 엄마표가 도시락이 되었고. 남자친구는 미래의 장모님이 될 분이 만들었다는건 그 김밥을 먹는 중에는 몰랐을 것이다.
이 남자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이제는 내가 엄마가 된것이다. 아이는 6살이 되어 소풍을 가기 되었다. 더이상 물러설 수 없는 김밥을 만들어내야 했다.
욕심이 너무 과해 sns에서 유행하는 캐릭터 김밥, 하트김밥과 같은 것을 소풍가는 아이에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김밥 만들 생각에 전날밤은 걱정이 앞서 잠도 잘 못 이뤘다.
아침에 되어 인터넷에서 본것 처럼 '차근차근, 아이가 먹어야 하는거니깐 좀 작게 그렇지 그렇게'...라며 마음속으로 내 자신에게 응원을 했지만 썰다보니 다 터지고 난리도 아니였다..
야속한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왜 슬픈 예감은 틀린적이 없던가..' 결국은 다 섞어서 주먹밥으로 만들어 보냈다.
아이가 한살 한살 더 먹을수록 나의 김밥싸는 실력은 점점 늘어나서 아이가 김밥 먹고 싶다고 하면 척척 만들어주는 엄마가 되었다.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전 세계를 강타하였고,더 이상은 평범하지 않은 일상이 되었다. 조심한다고 했지만 코로나는 우리 식구까지 공격하였고 엄마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엄마가 확진 소식에 너무 놀라고 충격적이였다. 혼자 병을 이겨내야 하는 엄마 때문에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였다.
몸이 불편하면 만사 귀찮다고 잘 안 챙겨드실까봐 그것이 제일 걱정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건 아침 점심 저녁으로 통화하면서 안위를 묻는 것 뿐이였다.
기운 없는 전화 목소리에 뭘 해드리면 엄마가 좀 기운을 차리실까 싶어 생각한것이 바로 '김밥'이었다.
즐겁게 소풍을 보내고 왔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며 나를 위해 싸줬던 그날처럼 오늘은 내가 엄마가 기분이 좋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정성껏 김밥을 준비하였다.
어릴때는 몰래 빼고 먹었던 시금치도 데쳐서 준비하고 밥도 고슬고슬 지어 준비한다. 마술부리듯 돌돌 말아 쓱쓱썰어 내 사랑을 함께 도시락에 담아 엄마네 집 문앞에 배달해드렸다. 오는길에
"엄마, 내가 문앞에 김밥 만들어서 놔뒀어."
"김밥? 안그래도 저녁 뭐 먹어야 했는데 잘됐네."
"엄마 베란다로 나와봐 얼굴 좀 보게."
"조심해서 가~"
엄마가 베란다 창문에 서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많이 아프지 않은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거 정말 네가 만든거 맞어? 밥 간이 딱 맞더라"
"그럼 엄마 내가 주부 9년차야.. 이제 김밥 정도는 눈감고도 싸지!!"
"그..래.. 언제 이렇게 커서 김밥 만들줄도 알고.."
엄마는 울먹이느라 말을 끝까지 못하셨다. 같이 울기 싫어 씩씩한 목소리로 "내가 누구 딸이야.!!"
"그래, 고맙다 힘나네!!"
음식으로 우리 모녀는 울고 웃으며 이겨냈다.
단지 우리는 김밥만 먹은게 아니고 그 안의 알록달록 사랑과 추억을 먹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