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잘할껄...
평일 이틀 연차를 내고 제천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계획 세우는 것도 귀찮고, 예약하는 일은 더 싫어하는 편이지만 친정 부모님을 모시는 여행이라 이번엔 내가 총대를 맸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여행이니, 내가 제천 가이드가 되어 완벽한 여행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한 달 전 예약해 둔 숙소 날짜가 다가오자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제천에 가면 꼭 가야 할 곳들이 있다. 의림지, 옥순봉 출렁다리, 박달재 같은 이름난 관광지들이다.
시간을 허투루 쓰기 싫어 이동거리가 멀지 않게 촘촘히 계획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계획은 계획일 뿐이었다. 제천은 처음이라 숙소에서 가까운 박달재와 작은 절인 목굴암부터 들렀다.
박달재 공원에 올라가며 박달재와 금봉이의 이야기를 부모님께 들려드렸지만, 막상 도착한 공원은 기대 이하였다. 아마 겨울이라 더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목굴암으로 향했다. 엄마가 좋아할 것 같아 넣은 일정이었는데, 이곳도 10분이면 관람이 끝날 만큼 아담했다. 관광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근처에서 석갈비를 먹은 뒤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를 100% 즐기고 싶었지만, 숙소 자체를 잘 모르니 그것마저 쉽지 않았다.
가족들은 모두 나에게 묻는다.
“여기서는 뭐 해?” “다음 일정은 뭐야?”라고 말이다.
여행을 주도하긴 했지만, 나만 바라보고 나만 의지하는 여행은 생각보다 큰 부담이었다.
부모님에게 이 여행이 재미있는지, 지루하진 않은지, 피곤하진 않은지 계속 신경이 쓰였다.
저녁이 되어 잠시 누워 휴대폰을 보며 쉬고 싶었지만, 착한 딸 컴플렉스 때문인지 평소엔 보지도 않는 일일드라마 세 편과 미스트롯까지 시청하고 나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전혀 없다는 생각에 더 피곤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여행 첫날이 지나갔다.
다음 날 아침 식사는 꼭 챙겨야 하는 부모님을 위해 일찍 일어나 조식당으로 향했다.
아침 8시에 나가기로 했는데 부모님은 새벽 4시 반부터 이미 준비를 마치고 계셨다.
새벽부터 설명하기 힘든 압박감이 느껴졌다.
호텔 조식을 잘 드시지 않는 부모님이 멀뚱히 서 계신 것 같아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정작 나는 거의 먹지 못했다. 부모님과의 여행에서는 여행지보다 식사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여행의 8할은 맛있는 음식이라고 믿는 나에게, 관광지 근처 맛집을 고르는 일도 모두 내 몫이었다.
혹시 음식이 맛없으면 어쩌나 괜한 걱정도 앞섰다.
많이 걷지 않게, 이동시간도 짧게 계획했지만 나이든 부모님에게 괜찮은지 확신이 없었다.
그렇게 1박 2일의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날 밤, 나는 죽은 듯이 13시간을 내리 잤다.
다음 날 일어나니 감기 기운이 있고 머리는 깨질 듯 아팠다. 여행의 피로는 다음날까지도 이어졌다.
운전하느라 고생한 남편의 눈치도 살펴야 했고, 부모님의 안위도 계속 신경 쓰였다.
여행지에서는 내 기분이나 컨디션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니 무척 피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행을 다녀오며 느낀 건, 부모님이 작년보다 또 많이 나이 드셨다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나보다 더 피곤했을 텐데, 내가 부모님의 안위를 살폈던 것처럼 부모님 역시 피곤한 티 내지 않으려고 애쓰셨을 것이다.
여행은 늘 가기 전이 가장 설렌다. 막상 가면 피곤하고, 돌아오면 또 다음 여행을 떠올린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여행은 귀찮고 신경쓸 일이 많아 솔직히 불편하다.
그래서 ‘나중에 가지’ 하며 자꾸 미루게 되지만, 나중에는 가고 싶어도 함께 갈 수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엄마는 종종 이런 말을 하신다.
“나중에 무덤 앞에서 개굴개굴 울지 말고, 살아 있을 때 얼굴 한 번이라도 더 보자.”
죽고 나서 울어봤자 소용없다며, 살아 있을 때 많이 웃자고 하신다.
여행지에서는 너무 피곤해서 빨리 집에 오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와 사진을 보니 왜 더 잘해드리지 못했을까 마음이 쓰인다.
힘들고 불편하다고 말하면서도, 나는 또 다음 부모님과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불편하지만, 그래서 더 소중한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