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는 미래 예언이 아니라 인생상담이었다
신년을 맞아 타로점을 보았다.
요즘 텔레비전에서 타로를 보는 연예인들이 자주 등장하다 보니 괜히 호기심이 생겼다. 하나에 꽂히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 탓에, 어느 순간부터는 관상도 보고 싶고 사주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마침 직업상담사 공부를 하고 있던 터라,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사주를 본다는 것도 어쩌면 인생상담의 한 방식 아닐까 하고 말이다.
직업상담사 공부를 하다 보면 ‘생애진로상담’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인생의 어느 한 시점에만 상담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태어나서 늙을 때까지 전 생애에 걸쳐 진로와 삶에 대한 질문은 계속된다는 이야기다.
몇 년 전 처음 직업상담사를 공부할 때만 해도 이 학문이 이렇게 재미있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그런데 40대가 되어 다시 책을 펼치니, 상담학은 이론이 아니라 삶 그 자체처럼 다가왔다.
온라인 강의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있는데, 직업상담사 공부를 하다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인지’와 ‘적성’이다.
어려운 단어는 아닌데, 막상 누가 설명해보라고 하면 “그거 있잖아… 인지” 하며 얼버무리게 되는 말들이다.
그 교수님은 이 두 단어를 이렇게 정리했다.
“인지는 대가리, 적성은 능력입니다.”
순간 웃음이 나면서도 묘하게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공부를 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이런 질문을 진지하게 하게 되었다.
나의 인지가 명확한가? 내가 원하는 꿈은 내 적성에 맞는가?
20대의 방황은 ‘뭘 해야 할지 모르는’ 불안이었다면,
40대의 방황은 ‘이제는 틀리면 안 될 것 같은’ 불안이었다.
이쯤 되면 내 적성을 정확히 알아야 할 것 같고, 지금 가는 길이 맞는지에 대한 확신이 절실해진다.
그런 시점에 타로를 볼 기회가 생겼다. 궁금한 질문 세 가지를 마음속에 준비해 갔다.
타로를 봐주신 상담가 선생님은 인자했고, 공간의 분위기도 따뜻했다.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를 말씀드리고, 선생님이 말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사주를 보며 어떤 걸 잘하고, 어떤 게 부족한지 나의 기질을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놀랍게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과 꽤 잘 맞아떨어졌다.
“사주 팔자 안에, 본인이 잘하고 원하는 게 이미 들어가 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묘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동안 나는 스스로를 잘 믿지 못했다.
‘이게 맞나?’, ‘내 적성에 맞는 일을 하고 있는 걸까?’라는 의구심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의 입을 빌려 “지금 가는 방향이 틀리지 않다”는 말을 듣자 끝까지 한번 해봐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때 친정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엄마는 수많은 유산 끝에 결혼 9년 만에 나를 임신했다.
임신이 좌절될 때마다 사주를 보러 다녔다고 했다.
“당신은 아이 없어.”라는 말을 들으면 또 다른 집을 찾아가 본인이 원하는 답을 들을때까지 물었다고 했다.
사주는 한 번쯤 볼 수는 있지만, 결국 가장 좋은 선택은 자기 마음이 움직이는 쪽이라고.
갈등할 때는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하는지 잘 보라고 하셨다.
이번에 사주를 보고 나서야 그 말이 정확히 이해되었다.
우리는 답이 없어서 헤매는 게 아니라,
이미 마음속에 정해둔 답을 확인받고 싶어서 돌아다니는 건지도 모른다.
상담학적으로 보면, 그날의 사주 상담은 미래를 예언해주는 시간이기보다
‘지지(Support)’와 ‘명료화(Clarification)’의 과정에 가까웠다.
상담가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기보다 내가 이미 알고 있던 생각을 정리해주었고,
흐릿했던 마음을 또렷하게 비춰주었다. 사주는 미신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데이터를 가지고 벌이는
한 판의 심리 상담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은 모두 미래를 궁금해한다.하지만 미래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내 스스로 준비할 수는 있다.
상담가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 말에 휘둘리지 말고, 앞날을 너무 깊이 걱정하지 말고,하루하루 마음 편히 살라고.
어쩌면 그날 내가 들은 말은 ‘지금 잘하고 있다’는 나 스스로의 응원이었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원하는 답을 찾아 여러 곳을 헤맸던 것처럼, 우리 모두는 이미 답을 정해둔 채
확신이라는 마지막 조각을 찾으러 다니는 건 아닐까.
사주 팔자에 적힌 글자보다 무서운 것은 내 마음속 망설임이다.
미래에 대한 섣부른 불안 대신, 오늘 하루내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고
걸어가 보려 한다. 내 적성은 ‘나’로 사는 일이고, 내 인지는 ‘행복’을 향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