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가 또 걸렸다. 목이 간질간질하더니 밤에는 목이 아파 잠까지 설쳤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고 나니 몸에 힘이 빠지고 자꾸 졸음이 왔다.
회사 마치고 그대로 쉬고 싶었는데, 집에 오자마자 식사 준비와 매일 반복되는 집안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몸이 안 좋아서 그런 건지, 그동안 불평 없이 해오던 집안일들이 유난히 버겁게 느껴졌다.
이런 날이면 불똥은 어김없이 신랑에게로 튄다.
“당신은 왜 집에 오면 손 하나 까딱 안 해? 내가 죽어야 설거지 도와주겠지. 내가 없어져야 빨래 돌리겠지.”
라며 독화살을 쏘아 올렸다. 이런 말 대신 나 너무 힘들어 좀 집안일 좀 도와줘 라고 했었야 했는데
또 너무 직설적으로 말이 나가버렸다.
내가 쏜 말에 맞아 죽었는지, 신랑은 아무 말이 없다.
그 침묵이 답답해 왜 대답이 없느냐, 고맙지도 않느냐고 다시 다그친다.
그제야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고맙지”라는 말이 돌아온다.
하지만 내가 듣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었다.
“오늘은 내가 설거지할게. 당신 좀 쉬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정말 죽어도 안 한다.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고맙다는 말을 들었지만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나는 다시 조건을 내걸었다.
"빨래는 당신이 돌리고, 개고, 장롱에 넣기, 설거지는 이틀에 한 번, 화장실 청소는 번갈아 가면서 하자고."
했더니 빨래는 할 수 있지만 ‘같이’ 하고 싶다고 했고, 설거지는 죽어도 못 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식기세척기 사주면 안 시킨다고 하지 않았냐고 하면서
세척기 돌릴 줄 모른다며 슬그머니 빠져나간다. 매번 이런식으로 어물쩍 넘어가려는게 싫다.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되는걸 못한다는게 이해가지 않는다.
신혼 초에는 화장실 청소를 도맡아 하던 사람이 이제는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 되어버렸다.
번갈아 하자고 말하면 또 침묵이다.
이번에도 작은 목소리로 “자신이 없다”고 한다.
자신이 없다는 말에는 하기 귀찮아 확답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신 없다고 했을것이다.
그후 독화살은 몇 번이나 오갔고 서로에게 상처만 남겼다.
결국 신랑은 마지못해 빨래와 화장실 청소를 하겠다고 말했다.
내가 원하던 조건 두 개는 얻었지만 이상하게도 뒷맛은 쓰다.
남편에게는 왜 집안일은 늘 ‘도와주는 것’이 되는 걸까. 왜 나의 일상은 당연하고, 그의 참여는 선택이 되는 걸까.가사노동은 산업활동에 포함되지 않기에 생산성 없는 일처럼 취급받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해도 티 나지 않고 하지 않으면 바로 티가 나는 일이 가사일이다.
몸이 아플 때마다 이 집에서는 어김없이 ‘집안일 난’이 터진다.
나는 언제쯤 이 반복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