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한마디에 나는 아무말도 못했다.
어머니 생신이 어제였는데, 오늘에서야 전화를 드렸다.
평소에도 자주 연락하지 못하는 며느리인데 생신까지 놓쳤다는 자책감에 마음이 무거웠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두 달째 떨어지지 않는 감기 탓에 잔뜩 잠겨 있었다.
생일날 전화 못드려 죄송하다고 하니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바쁜데 본인 생일까지 챙길 여유가 없을꺼라고 하셨다.
비꼬는 말이 아니라 정말 '괜찮다.'라고 하셨다. 시어머니는 차가울 만큼 쿨하시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장점이 장점으로만 느껴지지 않는것처럼
어머니의 쿨함은 어떤때는 좋고 어떤때는 차갑게 느껴진다.
전화끝에 항암치료를 마친 형님 이야기를 꺼내셨다. "나쁜소리 들을까봐 전화하기 겁난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어머니 제가 형님이랑 통화해볼게요."라는 말을 하고 짧은 통화를 마쳤다.
항암치료로 힘든 형님이랑 통화를 언제 했었나 생각하며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몸은 어떻냐고 물어보기도 어려웠다. 명절에 볼수 있냐는 형식적은 질문을 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조심스러웠다. 이번 설에도 만나는건 어려울것 같다고했다.
전화기 너머 들려온 형님의 목소리는 텅 비어 있었다. 자궁암 판정 이후 재발, 전이까지 겪으며 형님은 오랫동안 가족들의 걱정을 피해 숨어 있었다. 모든게 귀찮아서 그랬을것이다.
작년 여름 형님은 독한 항암치료를 받았고 다행히도 암 수치들이 다행이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수치는 돌아왔지만 형님의 기력은 아직 돌아오지 못한 모양이다.
내가 아파봐서 안다. 몸이 약해지면 덩달아 마음도 약해진다는 것을.
굳은 마음을 먹으려고 해도 그게 잘 안된다.
사람들은 정신력이 약해서라고 하지만 그건 모르는 사람이 하는 소리이다.
몸과 정신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걸 아프고 절절하게 깨달았다.
형님도 몸이 계속 아프고 힘이 없으니깐 마음까지도 연약해졌을것이다.
길어지는 병마에 지친 가족들이 "대체 언제 낫느냐"며 채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내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가장 가까운 이의 독설은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을 안겨준다.
자주 전화하진 않지만 전화할적 마다 '이제 그만 다 끝내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한다.
어떤 말이 위로가 될수 있을까...얼마나 아프고 힘들면 그럴까 싶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절로 나온다.
사람들은 위로하는게 가장 어렵다고 한다.
나도 그렇다.
어려워서 위로해야 하는 중요한 타이밍을 놓칠수도 있다.
어렵고 마음이 무겁겠지만 적시에 해주는 위로가 가장 베스트 위로 방법이다.
내가 받았던 위로중에 가장 최고의 위로는 '너를 위해 기도할게.'라는 말이였다.
벚꽃이 필 때는 꼭 나가서 구경하자고.힘들겠지만 더 많이 웃고,
나는 나을 수 있다고, 이겨낼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보자고.
날이 따뜻해지면 몸도 조금은 풀릴 거라고, 봄은 반드시 온다고.
아팠을때 내가 받았던 위로의 말을 떠올리며 형님 마음이 단단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겠다고 덧붙였다.
형님은 그래야지 하며 웃었다.
그러면서 나는 동서가 참 부러워 암 판정은 받았지만 다시 건강한 삶을 찾았잖아.
형님이 부럽다고 말했을 때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이말에 유방암 판정받았을때가 떠올랐다.
2023년 12월 유방암 판정을 받고 2024년 2월에 수술을 했다.
수술후 2년째이다. 아직도 갈 길이 구만리지만 지금까지 잘 지내온 내 자신을 꽉 안아주고 싶었다.
건강만 지켜달라며 눈물로 기도하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 간절함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오늘 다시 다짐했다.
아프고 나서야 알게 됐다.
건강은 당연한 상태가 아니라, 매일 지켜야 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회복 또한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올봄, 벚꽃이 피면 형님과 잠깐이라도 걸을 수 있기를 바란다.
완치라는 거창한 단어 대신, 오늘을 견디는 힘이 조금 더 생기기를 바래본다.
병이 길어질 때 우리가 건네야 할 말은
“언제 낫느냐”가 아니라 “지금도 충분히 잘 버티고 있다”는 인정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