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림교향곡

제주의 귤

by 은정



또까. 또까. 또까 .

과수원에는 크리스마스트리 알전구같은 귤들이 하나씩 켜지기 시작했다. 귤나무는 하늘로 우뚝 솟지 않고 팔을 양 옆으로 펼쳤다. 활짝 뻗은 가지 조랑조랑 매달린 알맹이들의 무게감이 기특하게 다가왔다. 이만하면 올해도 무사히 잘 보냈다.


아직도 싸늘한 초봄가지는 열매들을 모두 출가시켰다. 지난 계절을 부지런히 보내온 덕에 한껏 가뿐해진 몸이 시원섭섭하다. 드문드문 여태 남아있는 어리광쟁이 귤들은 과수원 참새들이 영리하게 쪼아 먹었다. 가지에서 차마 떨어져 나가지 못하고 가득 넘친 사랑때문일까. 수분 빠진 막둥이 귤들이 훨씬 더 달콤한 법이다.

이제 다시 한살이를 준비하려는 아빠의 전정가위가 바빠졌다. 새로운 열매가 잘 열릴 수 있게 약한 가지를 제거하고 혼잡한 부분을 정리했다. 잘라내고 비워낸 자리에 새봄이 들어섰다. 잘려나간 가지를 파쇄기에 갈았다. 기계에서 토해진 톱밥은 버리지 않고 뿌리 박힌 땅 위에 뿌려져 미생물들의 분해 작용에 거름이 되었다. 따뜻한 햇살이 온 나무를 감도는 소리. 투투투투 봄비가 이파리를 두드리는 소리. 땅 속 지렁이들이흙을 뒤엎는 소리들이 조화롭게 뒤섞일 때 쯤 작고 동그란 귤 꽃봉오리가 눈을 뜨기 시작했다. 며칠 낮 며칠 밤 사이에 과수원이 향긋해졌다. 어디 화단에 피어있는 꽃만 꽃일까. 귤나무의 주인공은 귤인지라 사람들 관심밖으로 밀려났다지만 자세히 보면 작디작은 귤꽃들은 좋은 향에 하얗고 수수한 매력이 넘쳤다.


날이 슬슬 무더워지면 꽃이 지고 열매가 맺혔다. 노지의 귤들도 귤들이지만 이제 하우스 안 만감류들 모든 알맹이들을 세심히 살필 차례가 되었다. 가지마다 적당한 열매만 남겨두고 적과를 하는데 이 작업은 꽤 오랫동안 계속 되었다. 빛이 잘 들도록, 가지에서 떨어지지 말고 무사히 자라도록 열매를 끈으로 묶어 하우스 천장 파이프에 휙 걸고 팽팽하게 당겨 고정했다. 한 여름 하우스 안은 비가 오고 천둥이 쳐도 쉬는 날이 없었다. 우락한 더위에 인부들은 아이스팩을 두른 조끼를 입었고, 뱃속이 허해지도록 찬물을 들이켰다.


틈틈이 거름도 주고 벌레가 일지 않게 약도 치면서 정성을 기울였다. 밭주인은 결코 자리를 비우는 법이 없다. 아침 저녁 하우스 문을 열고 닫으며 일정한 온도를 유지했다. 실수로 빼먹기라도 하면 겨우 반나절인데도 귤나무들이 타들어 죽어갔다. 자식을 키우듯 애닯은 살핌 속에서 귤들은 비로소 맛있게 익을 수 있었다.


여름을 견뎌내고도 가을이 지나면 슬슬 날이 추워지기 시작한다. 바람이 차고 기온이 떨어지는 바로 지금 귤들이 흐드러지게 익었다. 아주 짙은 이파리와 환한 열매에 제주의 겨울이 알록달록해졌다. 수확의 시기가 되었다. 이제 교향곡의 절정이다.


어린 시절 12월의 휴일이면 우리는 보통의 제주토박이들처럼 크리스마스에도 예외 없이 귤을 따느라 과수원에 있어야 했다. 때를 놓쳐 귤이 눈을 맞으면 금방 썩어버려서 상품성이 떨어졌기 때문에 쉬는 날은 없었다. 지금 내 나이의 젊은 엄마에게는 산타 할아버지보다 먹고사는 일이 훨씬 중요했다. 그때는 점심밥을 적당한 돌을 바람막이 삼아 버너에 냄비로 걸어 먹었는데 그 날만큼은 크리스마스인데도 일해야 하는 부모를 둔 철부지의 아쉬움을 달래려 사발면을 잔뜩 사다가 끓여 주셨다. 좀처럼 먹을 일이 없던 새우탕큰사발.육개장사발면에 가슴 설레면서 밥때를 기다렸고 겨울방학 숙제 첫째 날 그림일기에는 파랗고 노란 귤 옆으로, 사발면이 그려졌다.


하루 온 종일 과수원에서 놀았다. 콘테나를 레고처럼 겹쳐 집을 지었고, 강오(귤바구니)에다 무한한 상상력을 들이부었다. 어린 동생은 어디서 본 걸 흉내내는 건지 일없이 리어커에 돌을 싣고 날랐다. 우리들은 조금 자라자 또까또까 가위질하며 귤을 따서 진짜로 강오를 채우더니거기서 조금 더 자라자 선별을 하고 묵직한 콘테나를 착착 쌓아 올렸다. 그렇게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고, 대학나무는 마침내 이름값을 하게 되었다.


창고 콘테나에 쌓인 귤들이 선과장으로 보내졌다. 마당에 들고 나는 트럭소리, 탕탕 도장찍는 소리, 촤락촤락 플라스틱 끈이 감귤박스를 단단히 묶는 기계소리, 마을에도 몇 개씩 있는 선과장은 이 계절이면 지치지도 않고 돌아갔다. 선과기를 통과한 반짝반짝해진 귤들이 크기별로 박스에 담겨 서울이고 부산이고 팔려 나갔다. 요즘은 선과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상인들이 수확하는 날에 사간다고 한다. 또는 어떤 농사꾼들은 사업자등록증을 내어 생산자 직송으로 바로 판매를 하기도 한다. 어찌됐건 귤들은 이제 밭주인을 떠나 도시 속 지친 누군가의 겨울을 채워 줄 것이다. 누구보다도 그 사람이 환해지도록. 무엇보다도 그 사람이 상큼해지도록.


나는 여전히 겨울의 휴일을 친정과수원에서 보낸다. 다 자란 동생은 수확시기에 맞춰 휴가를 썼다. 수눌러 온 (품앗이 하러 온) 동네 삼촌들에게 내심 손주자랑을 하고픈 할망 하르방 등쌀에 우리 집 삼형제들도 같이 나섰다. 귤이든 사람이든 키우는 하루는 고달파도 듬삭한(든든한) 덩치들을 보면 제법 보람이 있다.


겨울의 귤은 한 시절의 마지막이고 1년짜리 러닝타임 교향곡의 클라이막스다. 짙은 이파리 사이로 주황색 귤이 아침 이슬에 제주 바람에 타라락 부딛쳤다. 시간을 화음처럼 착실히 쌓아온 과즙들이 껍질까는 소리를 뒤로 팡팡 터졌다. 매일을 우직하게 살아온 자들에게 보내는 탄성이, 보통 사람들의 삶을 함께한 달콤한 축포가입 안 가득 팡팡 터졌다.


올해도 언제나처럼 .

기꺼이. 무사히. 감사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