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밖거리에는 누가 사는가?

한울타리 두 집. 나의 밖거리 사람들

by 은정


처음 지은 중심이 되는 집과, 또 하나의 집. 마당 안에는 두 채의 집이 있다. 이 안채 바깥채를 제주 사람들은 ‘안거리 밖거리’ 불렀다.


보통은 부모세대가 안거리. 자식세대는 밖거리에 살았고 시간이 흘러 세대가 교체되면 안거리에는 자식가정이, 밖거리에는 노부부 혹은 배우자 한 쪽이 없는 부모가 살았다. 효율을 위한 이 관습에 의하면, 안팎거리는 부엌을 따로 쓰는 독립된 공간이자,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상부상조의 한 예이다. 같은 피붙이지만 한울타리 두 집. 그것이 안거리 밖거리다. 친밀한 듯 하지만 독립성이 확보되는 공간. 나는 마당 안 우리집 밖거리를 보고 있으면 여러가지 생각이 들곤 한다.


시어머니가 살았던 우리집 밖거리는 어린 아이들에 짐도 많고 시끌거렸던 안거리 집과는 사뭇 달랐다. 아무 때나 들어가도 십년 째 손톱깎이가 한 곳에 있고 방바닥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행주로 잘 닦인 그릇에 밥을 푸고 수시로 말린 이불을 덮고 살았던 어머니는 나중에는 기력이 쇠약해져 많은 작물을 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잡풀 하나 없이 우영팟을 일구었다. 가끔 안면이 있는 동네 삼춘들이 지팡이를 짚거나 유모차를 밀며 어머니의 밖거리를 찾아 오기는 했지만 대체로 번다하지 않고 조용했다. 조용했지만 자리를 비우지 않았고,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으로만 정갈하게 꾸려져 있던 밖거리는 바람많은 한 세상을 말없이 살아온 어머니를 닮았었다.

어머니가는 밖거리에 살면서 우리와는 따로 밥을 지어 먹었다. 물론 세탁기도 화장실도 따로 사용했다. 보통의 제주사람들이 그렇듯 당신의 삶을 지키며 살았다. 우리는 밖거리에 가스가 떨어지면 가스를 채워 넣었고 일이 늦게 끝날 때면 어린 막둥이는 보호자가 없는 집에 혼자 있는 대신 밖거리로 건너가 할머니와 여섯시 내고향을 봤다. 갑자기 어머니가 올래 밖에서 쓰러지기 전까지는.

마당 안 두개의 부엌 중 하나가 멈추고 말았다. 아롱대던 형광등 빛도, 테레비 소리도 기척이 없었다.


장례가 끝나고 그 겨울, 밖거리는 한동안 비어있었다.

우영팟에는 검질들이 왕상히 들어섰다. 돌보던 손이 사라지자 땅이 제일 먼저 알아차렸다. 집은 더 고요해졌다.



몇번의 계절이 지나고 밖거리는 새로운 주인을 맞았다. 안거리 복닥복닥 좁은 집에서 덩치가 산만큼 자란 열일곱 살 큰 아이에게 마당 건너 공간을 주었다. 텅 비어있던 방 안에 책상이 들어서고 옷장에는 교복이 채워졌다.

밖거리에 드나들던 사람들도 달라졌다. 아이 친구들이 주말에 한 번씩 놀러와 자고 갔고, 그때마다 막둥이는 형친구들과 깔깔거리며 게임을 했다. 고구마 삶는 냄새 대신 컵라면 물 붓는 소리가 들렸다. 늘 깔끔하게 정돈되었던 그 방 안에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널려있다. 그러나 어지럽게 팽개친것처럼 보였지만 아이 나름의 질서와 규칙이 있었다. 이제 또 다른 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열 입곱살 큰 아이는 잠은 밖거리에서 자지만, 밥은 안거리에서 먹는다. 가끔 아주 춥거나 밤늦게 컴퓨터게임을 하고 싶은 날에는 안거리로 와서 자기도 한다. 기말고사를 앞둔 요즘에는 집에 와도 자기 방에는 들어가지도 않고 안거리로 들어와 안방 이불속으로 엉덩이를 디밀고 들어온다. 그렇게 공부하기도 싫었냐면서 차가워진 볼따구를 슬쩍 꼬집어 보지만 사실 빙삭이 웃는 여드름 난 얼굴이 반갑기만 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훌쩍 일어나더니 성큼 밖으로 나갔다. 이제 아이는 마당너머 밖거리에서 진로와 미래를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안거리 밖거리 사이만큼이나 더 먼 세상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한 울타리 다른 집에서. 스스로 책임지게 될 자신만의 공간 안에서.


그리고 나는 안거리 부엌 창문 앞에 서서 설거지를 하며, 마당을 지나 텃밭 옆 밖거리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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