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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웅박 팔자

그 생각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27

by 어떤 생각



눈 내리는 저녁

가마솥에 불을 지피는

할머니 눈시울이 또 붉어지신다


대처 가는 길은

일정 때에도 눈이 많이 내렸었지

준다는 꼬임에 넘어가

탄광으로 징용간

어리숙한 사람들이 많았지

할아버지도 그랬단다

몇달 소식이 없다가

함께 갔던 외당숙은 살아왔는데

할배는 돌아오지 못했구나


그때 니 애비가 세 살 무렵이었고

과부댁 설움보다

밀보리싹 여물기도 전인

춘궁기 배고픔이 더 서럽더구나

지지리도 궁한 형편에

밀기울 잔뜩 들어간 풀떼기는

허기진 새끼들 먹이고

난 며칠 꼬박 굶었어

무슨 놈의 뒤웅박 팔자가 이런지


네 나이 서너살 때였나

집안은 또 다시 풍비박산 되었구나

선생 박봉이 힘들다고

전답 잡혀 토건회사를 하던

니 애비가 빚더미에 앉아

급하게 너를 맡겼는데

다행히 배급으로 준

우윳가루라도 있어 망정이지

아이고, 불쌍한 내 새끼


손자 어깨를 다독이며

눈발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할머니

아궁이 불길은 무심치 않은 듯

활개치며 타오른



할매 아리랑, 2024, Mixed media, 300mmX30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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