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떤 생각 Feb 08. 2024

순댓국

그 생각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28



국민학교 입학 전이었지

아버지 대신 할머니를 모시고 

농사꾼 작은아버지 손을 잡고

아우내 장터 우시장 부근,

지금은 유명 브랜드가 된 

순대국밥집에 갔지


담벼락에 광목을 치고

긴 나무의자 몇 개 놓은 할매집

바로 그곳이었지

여덟 개 마을 촌노들이 

털래털래 닷새장 구경 나왔다

한잔 걸치고 가는 곳


화덕에선 불꽃이 튀고

대광주리에 삶아 놓은 순대에서

하얀 김이 설설 피어오르면

나는 숙부가 시켜주신

털도 몇 가닥 는 비곗살을

맛있게 씹었지


허연 국물에 순대가 둥둥 떠있는

국밥은 숙부가 먹고

나는 쫄깃한 머릿고기부터

고소한 간과 허파

묘하게 생긴 살코기까지

수북이 쌓인 한 접시를


컥컥 목이 맥히지도 않고

아버지가 밥 대신

단박에 꿀떡꿀떡 넘기시던

막걸리처럼 맥히지도 않고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잘도 씹었지


뱃속에서는 퍼뜩 넘기라고

안달복달하는데

식구들 다 데리고 올 수 없어서

부모와 떨어져 얹혀사는 

불쌍한 놈이라도 한번

실컷 먹인다고


없는 대로 배고픈 대로 

함께 크던 사촌다 놔두고

나 혼자만 살짝 불러 먹이셨지

얼른얼른 식기 전에 많이 묵으라며

나는 많이 묵었으니까

니나 묵으라시며


몇 해 전 작은아버지 돌아가신 날

남몰래 울음 삼켰지

난생처음 행복했던 숙부와의 

그 비밀잔치 때문에

왜 하필이면 그날 그 일이 

번뜻 떠올랐는지 몰라도


지금도 명절에나

부모님 묘소를 찾아 가끔

아우내 시장을 지나가기만 하면

그때 그 순대국밥집에 가서

숙부와 돼지고기 한번 

실컷 먹고 싶어 눈물이 나지


그래서 요즘도 순댓국 먹을 때

머릿고기도 접시 시켜놓고 

울고 싶어지지




아우내 순댓국, 2024, Mixed media, 300mmX300mm

                    

작가의 이전글 뒤웅박 팔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