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는 무법자다?
그때도 나는 그 생각에 매달렸다 25.
오래전 조직생활을 할 때
부사장이면서 한때는 카피라이터로 꽤나 날리던 어느 노(老)선배가 시안 리뷰를 하다 갑자기 나에게 그랬다.
흠 그래, 아트(AD) 출신이라 간과는 좀 할 순 있지만.. 이라며 의도가 다분한 전제(專制)를 툭하니 던져 놓고는
문법을 깨부숴야 해
그리고 그 말에 책임이라도 지듯 찬찬히 주석을 달기 시작한다.
카피라는 건 말이지
글을 쓰는 기술에서 좀 벗어나야만 한다는 거야 김C D!
카피는 문학이 아니니 문법에 정면으로 부딪쳐 나가야지
안 그런가?
묵묵하였지만 암만 생각해도 그건 아닌데
다시 그 선배는 나에게 '원수여 너는 나의 용기다'라는 시인 임화(林和)의 말까지 들추며
신참들도 있는 자리에서
내게 용기 있게 문법에 투쟁하라며..
귀신 씻나락 까먹는 듯한 얘기를 한다.
그런데 내 생각은 이렇다.
광고 카피도 결국은 소통을 위한 문자나 소리 혹은 시각 언어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문법 없는 언어란 존재할 수가 없는 건 아닐까?
사실 문법이란 서로 소통하며 명료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모든 언어적 수단 및 현상을 의미하기에
문법 없는 언어란 곧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그런 뜻일 텐데
말하자면 언어 위의 어떤 큰 허공에 떠서
전지하고 전능한 존재처럼
그것이 어떻게 문법과 대응할 그런 생각을 했을까?
적어도 내 생각은 이렇다.
문법이 우리 몸안에 흘러 다니고 있다면
카피는 그냥 우리들 바깥에 있다.
모지라진 도시 그 속에 숨 탄 사람들의 재작거림처럼
날마다 가슴에 꽂히는 화살을 막아주는 소주잔처럼
마치 빨래에서 거품을 쏙 빼듯
얼굴의 점을 보기 좋게 제거하듯
발바닥의 티눈까지 싹싹 긁어내듯
끊임없이 세상에 사람에 허공에 대고
문자나 소리를 잎새처럼 날려 보내
휴대폰 인터넷 티브이 라디오 신문도 부족해 뭇사람들 수첩 갈피에 시장바구니가 있는 이 거리 저 거리에 낙엽처럼 수북이 쌓이게 만들어
신비와 호기심 관능으로 유혹하고 구매를 부추기는 행동의 중심에 충동의 옆구리에 몸을 부비면서 그렇게 떠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아니면 말고.
근데 조직관리를 방패로 삼아 자신의 일신(一身)을 위해서라면 물불도 가리지 않던 그 선배는 아직도 문법 타령만 하고 버틸까?
서쪽 하늘 210mmX140mm, Acrylic paint on Paper(Croquis Book),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