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가끔은 기름진 삼겹살을 양껏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동안 깔끌한 현미밥으로 줄였던 혈압수치는 잊고
맛있는 유혹에 그냥 빠지고 싶다
도끼눈 뜨지 않고 세상을 살고 싶을 때가 있다
출근도 않고 대낮부터 캔맥주 쌩 한 잔 마시고
잘 익은 떡꼬치처럼 소파에 널브러져 누워
쉰목소리가 일품인 현식이 형 노래를
조용한 아파트가 떠나가도록 크게 한번 듣고 싶을 때가 있다
언제부턴가 길거리에 떼로 몰려다니며
술 취해 낄낄대는 젊은애들을 만나면
점잖게 나무라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아주 젠틀하게 살아왔던 것처럼
"이보게 절므니 이건 공중 예의가..."
나이를 핑계로 칼칼대고 싶을 때가 있다
마치 세상의 도덕을 한 손에 쥔 것처럼
아니 나는 비루했던 세월 따윈 살지 않은 것처럼
얼마 전인가?
TV 속 드라마에 나오던 여배우 흰 어깨에서 뽀얀 낭만이 달려 나와
곤히 잠들었던 청춘의 가슴이 뜬금없이 뛴 적이 있어
내가 나에게 깜짝 놀란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반백년을 넘은 나잇살이
벌써 눈썹을 내리 깔았는데
어쩌자고 나는 너의 두터운 아픔을 살피지 못하고
이리 세속에 우거진 내 염려에만 분주했는지
가끔은 어른이 된다는 것이 참 두려울 때가 많다
살아갈수록 자신의 허점이 너무 많이 보이기 때문일 게다
지천명 나이도 점점 저물어가는 요즘은
그리고 보니 내어놓고 말할 것도 사실 별로 없고
누가 말했던 '인생 성공 단십백'이
나를 더 처절하게 한다
여름내내 지리했던 비가 그친 뒤
계절이 주는 분주함이 갑자기 남산 모퉁이를 돌아 내게로 가까이 오고 있음도
하늘에 점점이 떠있는 구름들이 별나게 창공을 벗어나 보임도
오늘은 더 구색으로 부추기고 있는데
뒤돌아 부끄러움이 지금 살아 숨 쉬고 있는 것만큼 절절할까!
아픔이 지나간 자리만큼 절실한 감동은 없으므로
내게 남은 부여받은 시간들에게
작고 소박한 꿈을 얹어 본다
영원까지의 오늘을 위해
그곳_여수항 210mmX135mm, Watercolor on Paper(Croquis Book),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