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으로 약속시간 늦을세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탄
3호선 충무로역.
환승역이라 빈자리가 있어
운 좋게 앉았는데 숨도 돌리기 전에
동대역에서 할머니가 들어오신다.
경로석도 만원인지
내 앞에서 머뭇거리는 할머니를 외면할 수 없어
착하게 자리를 내어드렸다.
"에구 절믄냥반 고마우이"
활짝 핀 저승꽃을 무릎으로 끌어안고
헐겁게 앉으시며 무심히 올려보다
내게 툭하니 건네시는 말씀이
"나이는 좀 잡순 거 같은디.. 암튼 절문께 부러 우이.."
주전자에서 뜨거운 김이 새 나가듯
잦아드는 목소리로
연신 구시렁거리신다.
"부러울 거 하나 없네요. 할머니도 그 시절 다 겪으셨잖아요?"
그래도 그땐 못 먹고 못 입었다며 억울한 한마디 기어코 던지신다.
진딧물처럼 끈적하게 달라붙는
생의 애착을 떼어내려는 듯
할머니 내리신 옥수역에는
들리진 않아도 눈에는 보이는 어머니 목소리처럼
하늘에서 억수 같은 비가 내린다.
그곳_선유도 420mmX135mm, Watercolor on Paper(Croquis Book)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