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수같은 비가 내렸다

그때도 나는 그 생각에 매달렸다 27.

by 어떤 생각



태풍으로 약속시간 늦을세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탄

3호선 충무로역.


환승역이라 빈자리가 있어

운 좋게 앉았는데 숨도 돌리기 전에

동대역에서 할머니가 들어오신다.


경로석도 만원인지

내 앞에서 머뭇거리는 할머니를 외면할 수 없어

착하게 자리를 내어드렸다.


"에구 절믄냥반 고마우이"


활짝 핀 저승꽃을 무릎으로 끌어안고

헐겁게 앉으시며 무심히 올려보다

내게 툭하니 건네시는 말씀이


"나이는 좀 잡순 거 같은디.. 암튼 절문께 부러 우이.."


주전자에서 뜨거운 김이 새 나가듯

잦아드는 목소리로

연신 구시렁거리신다.


"부러울 거 하나 없네요. 할머니도 그 시절 다 겪으셨잖아요?"


그래도 그땐 못 먹고 못 입었다며 억울한 한마디 기어코 던지신다.

진딧물처럼 끈적하게 달라붙는

생의 애착을 떼어내려는 듯


할머니 내리신 옥수역에는

들리진 않아도 눈에는 보이는 어머니 목소리처럼

하늘에서 억수 같은 비가 내린다.





그곳_선유도 420mmX135mm, Watercolor on Paper(Croquis Book)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