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얀색을 좋아한다.
하얀 나비
하얀 구름
하얀 셔츠
하얀 종이
그중에도 하얀색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는데
배고픈 대학시절
화실 연탄난로에 올려놓은
라면 끓이던 냄비에서 나오던
맛있는 새하얀 김과
그 김에 서린 유리창을 소매로
쓱쓱 문지르면 나타나던
아현동 언덕 풍경이
하얀색이었다.
소설'설국'의 도입부처럼
극적으로 하얗다는 것은
어두운 검정과
투명의 중간에 존재하는
모든 빚을 반사하는 무채색인데
무엇보다 가장 밝아서
흑색과 대조적인
백색으로도 불리어진다.
모든 색이 합쳐진 검정과
모든 색이 탈색된
투명의 경계에 있는
하얀색의 기준점은
단순함부터 완전함까지
특정되지만
배타적이고 전제를
의미하기도 한다.
서양에서는 천사의 성스러움을
나타내는 경외와 공포가
동시에 유발되는
신비의 색인데
동양에서는 더욱 청량감과
밝음을 지향하는
선험적(先驗的) 미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흔히 백옥 같다는 하얀색은
고결과 순수를 상징하고
스스로 환희하여 빛을 내는
무색(無色)으로서
심리학적으로는
종이의 여백을 떠올려
새로운 시작을 연상하기도 한다.
끊임없는 소생과
끊임없이 소멸하는
이중 지향적인 하얀색은
삶과 죽음이
동일선상에 있으므로
현세적 삶과
실천적 삶을 권고하는
철학적 의미도 담고 있다.
디만 검정과 투명의
역동적인 연소에 비해
하얀색은
정감 어린 마모와 같아
은유적 이미지로는
할머니의 무명 치맛자락처럼
늘 포근하고 행복한
그리움과 위안을 내게 준다.
지금 창 밖으로
비가 내리는 초겨울이 스산하다.
그러나 이내 다가올 하얀 겨울은
언제나 따뜻하다.
겨울풍경 210mmX135mm, Woodcut Print on Paper(Croquis Book),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