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난다

그때도 나는 그 생각에 매달렸다 23.

by 어떤 생각


어릴 때 나를 예뻐하셨던 여선생님의 담임 교실에는

같은 화가의 명화를 넣은 액자가 줄줄이 걸려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폴 세잔이었고

빨간 조끼를 입은 소년과 빨간색 사과가 그려진 정물화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교과서를 읽다가 '화가 난다."라는 구절만 봐도 "화가가 날아 다닌다"로 읽었다.

625 전쟁 때 군입대를 늦추기 위해 엉겁결에 대학까지 나오신 아버지는

나보고 나중에 대학 선생이 되라고 하셨다.


미술 선생님이 고등학교에 미술 장학생으로 추천하겠노라 했을 때

신이 나서 자전거 체인을 연거푸 갈아끼느라 새까매진 손으로 십리길을 달려왔고

좁은 시궁창 또랑 길도 동네 어귀 상엿집도 무섭지 않았다.

도화지 위로 달리는 묽은 붓질처럼 경쾌했다.


아버지가 집 앞 미나리깡 밭을 천리 밖인 듯 내다보다

한참을 지나 한숨과 함께 한마디 하셨다.


"시내 청주극장 간판쟁이 아직도 더라.."





그곳_청주 무심천 210mmX135mm, Watercolor on Paper(Croquis Book),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