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도 나는 그 생각에 매달렸다 35.
내 고향 구월은 코스모스 꽃이 하늘대는 풍경이다.
유년의 땅에서 추억이 가장 많이 서려있는 곳은
흑성산 그림자가 내려와 발을 담그고 있는
아우내로 돌아가는 시냇가의 무수한 구절초로 넘쳐나는 둑길이다.
갈대숲으로 휘돌아 맑게 흐르는 시냇가에 서서
저물어 가는 꽃무릇과 함께 묻혀지는 핏빛 노을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지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그곳이 내 감수성을 키웠던 곳이다.
그런데 지금은 분뇨탱크가 갈대밭 가운데 축조되어있어
냇물이 오염되어 황토흙은 콘크리트로 굳어 있었고
마을 초입에 서있던 커다란 느티나무는 키가 작고 초라하며
말 잔등처럼 타고 놀던 뒷산에 소나무 등걸은 볼품없는 것으로 변해있지만
지금도 부모님이 잠들어 계시는 그곳을 찾아가면
고향은 내게 지난날의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게 해 준다.
수로에 잠겨 밤길을 따라오던 물속의 달
고향집 뒤란까지 다가선 흑성산의 산 그림자와
밤하늘에 가득 찬 별과 먼산에서 들려오던 부엉이 울음소리
수시로 떨어지는 별똥별과 가을밤의 광대무변한 정적과 침묵
그런 것들이 겁 많던 어린 나를 떨게 했고 섬찢거리게 만들었고
까닭 없는 공포감으로 몰아넣었으며
그 무서움이 지금의 나를 조금이나마 순수하게 했을 것이고
이곳 복잡다단한 서울 한 복판에서
나를 그곳으로 쏠리게 하는 바람과 같은 글을 쓸 수 있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곳_아우내 210mmX135mm,Watercolor on Paper(Croquis Book),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