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비가 쏟아지던 서울로
명찰을 붙이고 늘어선 나무들 곁을 지나다가
가슴에 묻어둔 피붙이를 만난 듯 몇 번이고 이름을 외워본다.
작살나무- 작살나무- 작살-
아예 이름까지 작살이라 못 박고 빗속에 떨고 계신 그대는 누구신가?
기다림이란 저렇게 어디 한번 만나기만 해 봐라, 온몸 부르르 떨며
너를 작살내기 전에는 시들 수 없다고
제 키보다 작은 화분에서 한평생을 꼿꼿이 서서 버티는 것이다.
닿을 수 없는 거리인 줄 알면서도 끝없이 떠도느라
시퍼렇게 질린 나의 가슴에 온몸으로 콱!
꽂히려는 것이다.
작살나무
그렇게 온몸이 살아있는 작살이 되었으나
그리움 쪽으로는 한 발짝도 떼지 못하는 슬픈 나무가 있다.
북한산 836m 정상을 버리고 내려와 길도 아닌 다리 위에서
빗발치는 가을의 비람에 순순히 가지를 내어주고
빗물에 하나 되는 그런 나무가 있다.
먼 훗날 우리, 고동치지 못하는 심장으로
디딜 땅이 없어 하늘이 더 파랗게 느껴지는 날
아픔 없이 지나친 세월을 불러볼 수 있게 된 그날
누군들 한 번쯤 가뭇도 없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싶다며
처연하고 황량한 울음을 토하는 작살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미친 바램을 품어 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작살나무 210mmX135mm, Black Signpen on Paper(Croquis Book),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