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거울

아버지 얼굴에서 나를 보다

by 옹달샘

시골에 사시는 아버지가 딸이 보고 싶다고

하신다. " 우리 딸내미 하문 오너라!, 보고 싶어서 그래!" '아버지 문자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 아버지 뭐, 잡숫고 싶은 거는 없으세요?, 갈 때

사가지고 갈게요."

" 우리 딸만 보문 돼!. 그냥 하문 온나!"


아버지는 고향이 경상도이신데 문자도 소리 나는 대로 쓰신다. 귀가 많이 어두우셔서 통화보다 문자로 소통하는 게 서로 편하다.

그 이후, 멀다는 핑계로 한 달 만에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시골로 향한다.


빠르게 지나가는 창밖에는, 제법 노랗게 익은 벼이삭이 고개를 숙인 채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저 여릿여릿했던 볏잎이, 태풍에 꺾이지 않고 유난히도 비가 많이 왔던 지난여름을 무사히,

천둥소리에 긴장하며, 농부의 발자국 소리에 귀 기울이며, 한 알 두 알 영글어 간다.





아버지는 성격도 급하시고, 계획보다 행동이 먼저 앞서는 즉흥적인 성미로 젊으셨을 때는 실패를 여러 번 하셨다고 한다. 불같은 성격으로 인해 득 보다 실이 더 많았고. 좋게 생각하면 불의에 맞서 용기 있는 행동도 하셨지만, 독특한 성격 때문에

대인관계는 원만하지 않으셨을 듯하다.


그러니, 자식들에게도 인자하고 따뜻한 아버지라기보다, 자식들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 독선적인 아버지였다. 그 시절의 아버지들은 거의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대부분이었겠지만, 나의 아버지는 그런 엄격하고는 좀 다르다.





" 니는 모처럼 와서, 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노!" 우째 오래간만에 와놓고 고함만 지르고 난리고!."

'.....?' '안 들리시니까 큰소리로 얘기했을 뿐인데...' 이래서 종이에 써서 보여드리는 게 편하다.




"내가 집 앞에 나가면 내 차가 줄을 서 있어. 하문씩 바람 한번 쏘이고 나면 마음이 뻥 뚫린다!, 이번 추석에 느그 어무이 만나러 갈 끼다!."


'아버지가 젊은 시절에 대기업 회장이 되고 싶으셨는지...'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나러 가신다고...' 문득문득 황당한 얘기 하시는 걸 보고 오빠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 그렇지?, 아버지가 연세가 있어서 그런지 잠깐잠깐 그러시더라!"


산해진미가 눈앞에 있어도 속에서 받질 않으니 그림 속의 떡이다. 돌이켜 후회하지 않은 인생이 얼마나 될까,


아버지 집을 나서는 내내 걱정과 불안이 마음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퀭한 눈에 살 한점 남아 있지 않은 팔뚝은 내 작은 손아귀에 넉넉히 들어온다. 그 괄괄했던 아버지의 모습은 눈처럼 녹아내리고, 나의 가슴에 애잔한 강줄기 되어 흐른다.


아버지의 표독스러웠던 말, 힘든 세상살이에 위로가 되어 주지 않았던 아버지가 한때 섭섭하고 싫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런 아버지의 냉정함이 나를 더 단단하게 했고, 그런 아버지로 인해 내가 세상에 나왔는데,


내가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어쩔 수 없는 아버지 딸인 것을,

나도 부지런히 세월을 달려가고 있다. 엉킨 실타래 풀듯, 마음의 실타래도 한가닥씩 "술술" 풀리면 좋겠다.


올 추석에는 그동안 소원했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지난 얘기들로 웃음꽃 피는 한가위가 되길 소망한다.


서산으로 지는 태양은 오늘도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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