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안개가 짙게 깔린 첫새벽이었다. 길을 가로막은 안개 사이로,
길 한편에 빨갛게 타오르는 모닥불이 눈에 들어왔다. 불빛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불이 담긴 큰 드럼통은 이곳의 시간을 말해주기라도 하듯 군데군데 녹이 슬어 있었다.
오랜 시간 이 자리에서 겨울 새벽을 지켜 왔을 것이다. 삶의 현장으로 나갈 사람들의 언 손을 녹여주고, 서로를 격려하며 하루의 안전을 이 불에 담아 기원해왔을 것이다.
말은 없었지만 그런 마음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듯했다.
조금 쑥스럽기도 했지만 용기를 내어 다가가서 불을 쬐었다. 나무 타는 소리가 정겨워 자연스레 시골 부엌이 떠올랐다. 처음에 아궁이에 불을 붙일 때는 잔가지를 얼기설기 올려놓고 마른 잎에 불을 붙이고 불씨를 살리곤 했다. 냉기가 돌던 부엌은 서서히 덥혀져 아궁이에 앞에 앉은 얼굴은 금세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궁이 속에 타고 남은 불씨가 아까워, 고구마와 감자를 넣어 은근히 구워 먹던 기억도 떠오른다. 그때를 생각하니 혼자 빙그레 웃음이 난다. 겉이 까맣게 탄 호박고구마를 반으로 잘라 호호 불며 먹었던 기억, 샛노랗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는 색깔도 예뻤지만 그 맛이 꿀보다 더 달아 겨울 간식 중에 최고였다.
마침 이곳 주인이 고구마를 잿속에 넣어 익히고 있었다. 새벽일 나가는 사람들에게 아침 간식으로 하나씩 나눠주려는 듯했다.
내게도 하나를 건네주었지만 선뜻 받기가 미안해서 사양했다. 몇 번이나 권하길래 마지못해 하나를 받아 들고 먹었는데, 기계에서 굽는 군고구마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맛이 깊었다.
요즘은 군고구마 장사도 보기 드문 터라, 이렇게 남은 불씨로 구운 고구마를 먹어볼 수 있는 기회가 흔하지 않은데. 횡재를 한 기분이 들었다.
장작불은 사그라들고 주변의 공기는 다시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초면에 고구마 하나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 안개가 자욱한 길을 다시 걸었다. 촉촉하게 젖어있는 길 위는 별가루가 뿌려진 것처럼 반짝거렸다. 하늘에 별은 보이지 않았고 가로등 불빛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익숙한 산책로의 갈대는 오늘도 변함없이 구부정한 어깨로 서 있었다. 가분수가 된 몸을 끌어안은 채, 뿌리에 기대어 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그런 갈대 옆에,
나라도 모닥불 하나 피워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