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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트리 Jun 24. 2022

당근, 목에 걸리다


나눔 하기 전

나는 물건들에 소홀함이 없는지 다시 한 번 신중히 체크한다.

오염되어 있거나 기능상의 문제가 있다면 나눔의 취지에 맞지 않으므로

가급적 사용한 적 없는 물건들 중심으로 업로드해 나간다.

지난번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나눔 받고자 했던 이가 남성이었다는 사실을 나눔 현장에서야 알게 되었다.

“아니, … 왜?”

“여친에게 선물하려고요”

“아, 네~”

치밀었던 의아함을 반성하며, 되레 살짝 감동했던 것도 같다.

“모쪼록 쓸모 있기를 바랍니다”

나름의 덕담을 남기고 돌아서는 뒤꼭지에 그가 한 줄 보탰다.

“에효~, 안 맞으면 뭐, 나눔 해버리면 되죠!”

“……”

순간 당황했고

그 뒤로도 한동안 불쾌함을 그칠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돼서야 

그가 내게 가르쳐준 한 수를 깨닫게 되었다.

나눔은 나의 손을 벗어난 그때 종료된 것이다.

이후의 쓰임에 매이는 건

나누고 나서도 여전히 그 물건에 집착하고 있는 것.

엄밀히 말하면,

그 누군가마저 나의 의도에 꼭 들어맞아야 한다는 억지였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걸려 있던 당근이 쓱, 목을 타고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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