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새소리가 잔잔히 흐르는 가운데, 흑인들이 그 특유의 목소리로 부르는 ‘레인메이커’가 울려 나오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새소리로 표현된 자연의 음성 위로 조화롭게 입혀지는 ‘레인메이커’의 화음이 절묘해서 영화의 서두부터 반쯤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우거진 나무 아래 기린의 영상이 드러나고, 기린 두 마리가 다가가 기다란 목을 서로 맞대고 있는 모습은 영화의 주제를 함축하는 복선처럼 여겨졌다.
이 영화는 교육의 근원적인 당위성을 다루고 있다. 인종차별정책을 바탕으로 벌어지는 문제점이 제시되고, 그것은 결국 ‘교육’의 문제로 조명된다. 미래를 위해 배워야 한다는 흑인들의 응어리진 외침이 이 영화의 축을 이루고 있다. 인권을 보장받는 인간평등의 길이 교육에서부터 출발된다는 가르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영화는 1930년 영국인의 농장에서 시작된다. 1948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아프리카너의 국민당이 집권하면서 인종차별정책을 실시하였는데 이것이 ‘분리주의’이다. 1680년대 종교박해를 피해 유럽을 떠나 남아프리카에 이주한 독일, 프랑스, 화란인들은 ‘아프리카너’라고 불렸다.
주인공 피터 필립 케네스(PK)는 영국식 문학과 음악, 그리고 아프리카의 꽃향기와 새소리 속에서 자라난다. 그는 엄마에게서 영국을, 유모에게서는 아프리카를 배우게 된다. 흑인 유모는 그에게 ‘의지가 굳세면 몸이 죽어도 정신은 살아 남는다’고 가르쳤다. PK가 태어나기 3주 전 아버지는 코끼리에 밟혀 사망하였으며 어머니마저 병이 들자 PK는 주로 독일계의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의 기숙사로 들어가게 된다. 이 학교 유일한 영국인으로서 PK는 미움의 대상이 된다. 학교에서 멸시의 눈길들 때문에 두려움에 떠는 PK에게 유모는 줄루족의 무당을 불러 그에게 용기를 심어준다. 무당은 그에게 ‘용기의 닭’을 주고 무서움증도 고쳐준다. 앓고 있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였다.
학교에 돌아온 PK에게 용기의 닭은 유일한 친구였다. 그러나 한달 뒤 발발한 전쟁에서 히틀러가 영국을 이기게 되자 자신들을 구해주리라 믿는 아프리카너들은 해방의 날을 떠들썩하게 기다린다. 이때 용기의 닭이 처형되고 만다.
유모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할아버지가 PK를 영국인 거주지로 데려온다. 그는 선인장을 연구하는 독일인 피아니스트 ‘닥’을 보내주어 PK의 교육을 맡게 한다. 닥은 PK에게 이렇게 말한다.
“ 학교에서는 자료를 얻고 자연에서는 생각을 배워라.
질문을 하면 자연은 모든 해답을 준다. 그 다음엔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자연은 모두 서로 협동한다. 해가 없으면 달빛도 없지,
둘이 합쳐야 달빛이 생겨.”
PK가 닥에게서 선인장을 가꾸는 법과 음악, 자연을 배우던 중 독일인을 모두 수감하라는 영국 정부의 명령에 따라 닥이 교도소에 수감되고 만다. 닥은 수감되었지만 아프리카너 간수들은 그를 최고의 지성인으로서 예우해 준다. 학교가 끝나면 PK는 매일 그에게 가 공부를 이어나간다.
영국 정부가 독일인을 수감하는 불평등 차별책을 실시하듯 수용소 내에도 인간 차별은 여전하다. 흑인 기엘피트는 40년 간이나 갇혀 있었던 자인데 PK는 그에게서 권투를 배우게 된다. 피트는 ‘머리를 써서 이기는 법’을 가르쳐 준다. 그는 PK에게 처음에는 머리로 다음에는 마음으로 그러면 몸도 잘 쓰고 마음도 잘 쓰게 될 거라고 용기를 준다. PK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선인장 뿌리를 싸는 담배잎을 늘 넘겨준다. 그 뒤 PK는 수용소내 권투 시합에서 챔피언이 된다.
아프리카인들에게 ‘레인메이커’는 부족끼리 싸워 가뭄이 들면 찾아와 싸움을 끝내고 비를 부르며 평화를 이룬다는 의미심장한 믿음의 상징이다. 그들은 힘겨울 때나 슬플 때나 그 노래를 부르며 스스로를 달래고 믿음을 키워간다. 수용소 내 흑인들에게 PK가 도와주고 담배를 주고, 편지를 대필해 주고 자신들을 평등하게 대해주자 그들은 PK를 레인메이커라 믿고 따르게 된다. 희망의 대리자가 된 셈이다.
어느 날 피트가 간수로부터 심한 모욕을 당하는 것을 본 PK는 인간의 야만성과 자신의 무력함 때문에 분노한다. 그러던 중, 수용소에 장관이 시찰하기 위해 오게 되자 닥은 음악회를 부탁받는다. 목소리로써 악기를 대신해야 하는 연주, PK가 간수를 비난하는 가사로써 흑인들을 지도한다. 마침내 음악회의 날, 시작에 앞서 연단에 선 간수는 협박하며 으르렁거렸지만 PK는 “아프리카의 하늘 아래 하나가 됩시다”라고 외치며 우레 같은 박수를 받는다. 하지만 이때, 음악회장을 벗어나 있던 피트는 간수로부터 심한 구타를 받고 숨지고 만다. 부족의 합창을 들으며 숨을 거두는 짧은 동안 그는 진정한 自由人이었다. 그는 PK에게 작아도 똑똑하면 이긴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긴다. 아프리카의 하늘 아래 하나가 되자는 울부짖음은 그들을 완전한 하나의 결속체로 엮어놓는다. 레인메이커는 그들에게 사랑이나 미움보다 더 강력한 종교였다.
1948년 전쟁이 끝나고 닥이 돌아가 버린 뒤 혼자 남은 PK는 웨일즈 학교에 진학한다. 그는 우수한 학생이었을 뿐만 아니라 고교 권투 챔피언이 된다. 권투를 하면서 그는 ‘링 밖은 차별이지만 링 안은 평등’이라는 진리를 얻게 된다. 또한 권투 시합을 구경하러 왔던 마리아 마라이스와 가까워진다. 마리아는 배타적인 민족당 중심 인물인 마라이스 박사의 딸이었다.
고교 챔피언이 된 PK에게 듀마라는 흑인 참피언이 찾아온다. 듀마는 그에게 자신과 대결해 줄 것을 요청해 온다. 흑인들에게 레인메이커가 되어 있는 PK와 싸움을 벌여 자신이 이긴다면 레인메이커라는 PK의 허망한 전설은 잊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싸움은 PK의 승리로 끝나고 만다. 그렇게 살아 있는 전설이 시작된다.
흑인들 중 2%만이 학교에 다니는데 수업 내용마저 노동에 관한 것뿐이었다. 또한 변소는 200명 당 1개로 매우 열악한 상태였다. 듀마는 PK에게 배움을 줄 것을 부탁한다. 배우지 못하면 언젠가는 분노를 일으키게 되고 분노는 폭력을 부르며 그렇게 되면 흑·백 모두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서 가르쳐 달라는 부탁이었다. PK는 자연으로 가 장엄한 폭포의 위용 속에서 대자연의 모습을 보고 야학을 할 것을 결심한다. 그러나 외부의 압력에 의해 해산당하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진압하는 경찰로부터 마리아마저 사망한다.
마리아의 죽음으로 마음을 더욱 굳힌 PK는 대학의 입학허가를 포기한 채 듀마와 함께 프레토리아로 향한다. 닥의 정의와 피트의 희망, 무당의 용기와 마리아의 목소리가 그들을 이끈 것이다.
교육의 당위성은 이 작품을 통하여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작품은 교육을 인간 생존의 문제로까지 유도함으로써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교육이 먼저냐 혹은 인간평등의 권리가 먼저냐 하는 문제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를 묻는 것과도 같다. 그러한 우문에 현명하고 명쾌한 해답을 이 영화는 내려주고 있다. 교육과 인간평등의 문제는 서로 상보적인 구실을 한다. 일방적으로 차별되는 사회에서 깨어 있는 자각으로 이끄는 것은 교육이며, 평등이 실현될 때 비로소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인간평등은 생존권이라 할 수 있다. 노예해방이 있기 전 그들의 삶은 생존권을 박탈당한 채 누군가에게서 사고 팔리는 소유물로까지 전락해 있었던 것이다.
영화의 머리에 떠오르는 두 마리 기린의 영상처럼 교육과 인간 평등의 문제는 함께 어우러지는 상보적인 구실을 함으로써 서로를 이끌어주게 된다. 여기에 잔잔히 깔리는 레인메이커의 화음은 놀라운 감동을 주었다. 완벽하고도 절묘한 화음은 흑인들의 저력을 의미한다. 레인메이커의 화음은 그들이 구체적인 교육을 받은 결과가 아니라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스스로 완성된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레인메이커를 수호신처럼 믿고 따랐기 때문에 외부인들의 압력과 박해에도 의연하게 대처하고 참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레인메이커는 신앙이며 의지이고 그들의 저력을 이끌어내는 구심점이다. 그들의 내재된 힘이 교육에 의해 훌륭히 빛을 낼 수 있다는 것이 실제로 이 영화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특히 수용소 내에서의 대단위 합창은 엄청난 것이다. 그들은 “아프리카의 하늘 아래 하나가 됩시다”라는 PK의 목소리를 레인메이커의 음성처럼 따르고 성황리에 음악회를 장식한다. 낱낱이 분리되어서 각각의 자신은 쓸모없는 존재라고 자인하는 그들에게 하나의 연결고리로서 거대한 힘으로 엮어 놓은 것은 레인메이커에 대한 믿음이다. PK는 레인메이커에 대한 믿음을 통해 놀라운 대 합창회를 연출해낸다. 레인메이커의 이름 아래 그들의 저력은 남김없이 분출된다.
까닭 없이 천대받으면서도 그 불평등이 잘못된 것임을 자각 못하고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은 그들이 이미 그런 생활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자신들에 대한 차별을 당연하게 조차 받아들이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교육의 부재, 곧 무지 때문이다.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마저 자각하지 못하고 있음으로 해서 그들은 미래를 설계할 수 없었던 것이다.
PK는 어려서 어머니로부터는 영국식 문학과 음악, 그리고 유모로부터 아프리카를 배웠다. 꽃향기와 새소리,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 그것은 무언의 가르침을 우리에게 준다. 볼렌슈타인 교수(닥)가 PK에게 한 말을 주의 깊게 새겨볼 만하다.
“학교에서는 자료를 얻고 자연에서는 생각을 배워라. 질문을 하면 자연은 모든 해답을 준다. 그 다음엔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학교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자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자료를 모아 서류 뭉치를 쌓아간다면 그 사람의 지식은 불어갈 것이다. 그러나 사유의 깊이를 축적시킬 수는 없다. PK는 어려서 생활한 자연의 웅장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자연의 이치 속에서 순리를 깨달았을 것이다. 여기에서 얻어진 사유의 깊이는 지식의 힘과 더불어 마침내 그를 정의의 길로 인도하는 구실을 한다. 또한 닥이 심취해서 기르던 선인장의 의미 역시 중의적 의미를 지닌다. 선인장의 뿌리는 물기 없는 사막에서 꿋꿋이 자라나는 의지력을 보여준다. 선인장의 잎이 가시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은 사막의 기후, 그 뜨거운 볕과 적은 강수량을 이겨내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영화에서 닥이 기르던 선인장이 자연스럽게 자주 부각된 이유는 그 강인한 뿌리를 강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것은 차별되고 멸시되기까지 하는 척박한 사회에서 견뎌 내는 흑인들의 힘을 상징한다.
척박한 땅에서 피어나는 선인장의 꽃은 얼마나 화려한가? 고된 역경을 뚫고 피워 올린 결실이야 말로 선인장의 꽃처럼 아름다우리라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수용소 내에서 PK는 피트로부터 작아도 머리를 쓰면 이기는 법을 가르쳐 준다. 피트는 간수로부터 굴욕을 당하면서도 이를 참아야 했다. 피트 혼자의 힘으로는 차별정책에 항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간수 한 명도 감당하기 어렵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한 사람의 힘들이 모여 장대한 폭포수와 같은 화음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임종의 순간에 깨닫게 된다.
PK가 야학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듀마의 요청 때문이다. 듀마는 배우지 못하면 분노를 일으키게 되고 분노는 폭력을 일으키게 되며, 자신들은 무엇보다 미래를 위해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듀마가 말하는 분노란 이유 없는 분노이다. 억압되는 상태에 대해 분노를 품을 수밖에 없지만 무지로 인해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분노의 적합한 이유와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폭력을 부를 따름이며 극한 상황으로까지 치닫게 된다.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설계하고 밀어가는 일, 그러기 위해서는 자각이 필요하다. 자신들이 지배되고 착취되는 것은 배우지 못한 탓임을 상기시키고 그 요인을 스스로 해결해 갈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일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PK는 야학을 결심하기에 앞서 자연으로 가 웅장한 폭포수를 보고 자신의 힘이 나약한 한 방울의 물방울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폭포수를 이루는 물줄기의 근원은 결국 한 방울의 물이 아닌가. 그것을 통한 깨달음으로 해서 PK는 자신이 흑인을 밝은 길로 인도할 큰 힘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모아져 레인메이커의 절묘한 화음을 이루던 광경을 생각한다. 그와 같이 PK가 흑인 한 사람을 가르침으로 해서 교육받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마침내 미래를 설계하고 개척해 나가게 될 것이다. 레인메이커는 흑인들의 전설적인 신앙이었다. 그 신앙의 믿음은 PK에게 던져져서 교육을 통해 스스로 무지를 헤쳐나올 수 있는 힘이 되어 준다.
현 교육의 문제점은 교육의 근원적 이유를 그릇되게 인식하고 있는 데서 온다고 본다. 우리가 배워야 하는 이유는 진학과 취업만이 목적이 아니다. 사유의 폭을 넓힘으로써 인간존엄의 권리를 찾는다는 그 본래의 기능을 생각한다면 획일화된 지식만을 쌓는 일에 몰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의 현장에서 자연의 위대한 이치를 통한 획기적인 가르침이 뒤따라야 한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므로 점진적인 절차와 철저한 계획 따라 시도되어 나가야 한다. 한 방울의 물이 폭포가 되듯이 자연의 일부가 된 겸허한 마음가짐으로 교육의 힘을 통해 일어서라고 이 영화는 말해준다.